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학에는 적절한 내부통제장치가 없다. 유서깊은 사립대학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학에서 교수와 교사는 피동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는커녕 학교 내에 짓고 있는 건물의 평당 건축비가 얼마인지를 알지 못한다.
학생과 학부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생은 피교육자라 참여가 제한되고, 학부모는 행여 자식에게 피해가 올까 봐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외부통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소비자의 선택행위에 의해 매일같이 평가되고 통제되는 기업과 달리 사학에서의 소비자 선택권은 크게 제약된다.
대학의 경우 가지 못해 안달을 하는 판에 학교의 도덕성이나 운영상태를 따질 여유가 없고, 중고등학교는 선택권 자체가 박탈된다. 시장, 즉 소비자에 의한 통제가 작동할 틈이 없다.
그나마 있는 통제라면 국회와 교육행정기관에 의한 통제이다. 그러나 이 또한 기대할 바가 못 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회는 사학재단의 입장을 대변한 지가 오래 되었다.
또 교육행정기관의 통제는 사학재단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학사운영을 간섭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 엄청난 간섭을 하면서도 막상 사학의 재단비리 등에 대해서는 왠지 물러빠진 입장을 보여 왔다.
이러한 통제와 견제체제의 결여가 무엇을 불러 왔는지, 또 무엇을 불러 올 것인지는 확연하다. 어찌 상문고 사태가 상문고 만의 문제이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적지 않은 사학 재단들이 견제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수많은 화약고가 만들어 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올바른 견제와 통제의 구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학교운영, 특히 재정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
사학재단의 자의적인 운영과 부정의 소지를 미리 없애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학내 민주화를 통해 사학재단의 힘이 내부의 힘에 의해 견제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육행정기관에 의한 통제는 이제 믿을 수도 없고 자율과 경쟁의 시대에 맞지도 않다. 교수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의 견제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사학이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학재단과 일부 국회의원들은 재정운영의 투명화와 학내 민주화를 반대하고 있다. 재단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며, 재단을 무력화함으로써 '건학이념'을 살리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사학에 대한 투자유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는 이치에 닿지 않는 이야기이다. 사립학교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법인이다.
설립과정에 있어 국가로부터 갖가지 혜택을 받고 있으며,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거의 대부분을 국민의 세금이나 학생과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얻고 있다.
실질적인 투자 부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운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채 불투명한 운영을 할 권리는 없다.
민주성과 투명성이 '건학이념'을 실현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논리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논리이다.
조직의 건전한 운영과 가치의 실현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에 있어 조직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희생해 가면서 까지 얻어야 할 건학이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상문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국회와 정부는 하루 빨리 사학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학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게 하기 위해 민주성과 투명성을 일부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면 이는 이미 국회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다.
필요하면 교육에 있어서의 사학의 비중을 줄일 수도 있다는 각오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민주성과 투명성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교육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병준ㆍ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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