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소극장 뮤지컬로 자리를 굳힌 학전 소극장이 15일로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한국 연극 1번지인 서울 대학로의 터줏대감이 된 셈이다. 대학로의 40여개 소극장 중 자체 극단을 갖고 꾸준히 작품을 올리는 데는 학전 뿐이다.학전의 뮤지컬은 쇼 스타일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달리 우리네 삶을 다루고 라이브 밴드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 많은 고정팬을 갖고 있다.
4월 독일 베를린 공연을 앞둔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의형제' '모스키토' 등 번안 뮤지컬이 학전 작품이다.
극장을 운영하고 극단을 만들고 직접 작품을 연출해서 무대에 올려온 학전 대표 김민기는 지난 10년을 한마디로 "힘들고 피곤할 뿐"이라고 했다.
"학전이 블루와 그린, 2개 극장을 갖고 있다고 '재벌극단'이라고들 합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빚이 5억원입니다.
공연이란 게 제작비 건지기도 힘든 건데, 부자 극단이라고 지원금을 신청해도 잘 안줘요. 전생의 무슨 업으로 이 일을 하는지.. 일단 시작했으니 쓰러질 때까지 가는 거지요. 꼭 자전거를 탄 것 같아요. 멈추면 자빠지니까 계속 달릴 수 밖에."
흘려들을 푸념이 아니다. 연극 동네의 이번 겨울은 혹독했다. 관객이 확 줄었다. 연극인들은 ' 2의 IMF'고 했다. 소극장은 더 힘들다.
문예진흥기금 등이 공연을 지원하지만, 작품만 지원하지 소극장은 아예 빠져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가 과제다.
"독일은 국가와 주정부가 소극장을 지원합니다. 공연예술이 영화 등 모든 장르의 상상력과 사람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소극장은 그런 점에서 일종의 못자리인 셈입니다. 못자리가 있어야 큰 논에 모를 옮겨 심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못자리를 조성해주지 않으니.."
힘들고 맥빠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 일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부터 창작 뮤지컬에 착수하겠다"며 그동안 번안 뮤지컬에 주력해온 학전의 전환을 예고한다.
"기존 작업은 서양 재료를 우리 입맛에 맞게 요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판소리 등 우리 것으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추는 뒤집기를 시도하려 합니다. 중국 경극이나 일본 가부키 등 동양 문법을 우리식으로 소화하는 일도 해볼까 합니다."
'아침이슬' '친구' 등의 가요 작곡가로,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지금의 일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소개로 후배네 건물 지하 소극장에 들어가기로 했던 극단이 입주를 포기하자 후배한테 미안해서 떠맡았다는 것. 시작하자마자 수지 맞추기는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왕 문닫을 바엔 직접 작품 만들어 올려보자고 작정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
직접 연출하는 것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란다. 이쯤 되면 연출가 김민기가 별 볼 일 없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그는 배우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만의 표현을 찾게 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노예 부리듯 이래라 저래라 지시해서야 배우가 연출가의 상상력을 못벗어나지 않겠냐. 배우가 자기 표현을 찾게 돕는 게 연출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김민기식 연출법은 설경구 방은진 등 많은 좋은 배우를 길러냈다. 그의 지난 10년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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