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간 한반도의 하늘을 떠나지 못하던 혼령을 잠재우는 한 판의 지노귀새남(망자의 혼령을 천도하는 굿)이 막을 내렸다.황석영(58)씨가 지난해 10월 16일부터 한국일보에 연재해 오늘 대미를 본 '손님'은 아직도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떠돌고 있는 냉전의 귀신, 외래 이념에 희생된 망령들을 달래어 보내기 위해 벌어진 큰 굿판이었다.
"이제 후련합니다. 10년 전부터 저에게 부채처럼 지워져있던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합니다." 황씨는 한국전쟁 기간에 일어났던 가장 비극적 살륙의 실체를 소설화한 '손님'의 마무리로 자신의 문학 여정도 새로운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었다. 10년 동안 연재했던 '장길산' 이후 16년만에 '손님'으로 한국일보 독자들과 다시 만날 수도 있었다.
'손님'은 1950년 전쟁 발발 직후 황해도 신천군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대립으로 45일 간 3만 5,000여 명이 희생된 악몽 같은 살륙의 배경과 과정을 다룬다.
전쟁 발발 50주년이자 21세기가 시작되는 해였던 2000년 이 작품을 연재함으로써, 그는 우리 현대사에 굵은 문학적 획을 그은 셈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피해자였을 뿐입니다. 북한 측은 사회통합을 위해 신천 사건을 미군의 양민 학살로 규정하고 있지만, 제가 파악한 실체는 그것이 아니었지요.
기독교와 사회주의라는 외래의 모더니티가, 해방 이전부터 토착적 경제ㆍ사회 기반이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하지 못했던 황해도에서 맞부딪혀 손님(마마ㆍ천연두)처럼 민중을 할퀴어 증폭된 사건이었습니다."
유령들이 떠돌고 귀신들이 울부짖었다. '손님'은 끔찍했다. 황씨는 미국에 살아있던 주인공 류요섭 목사를 신천으로 돌아가게 해 형님 류요한, 마름 일랑(이찌로), 상호 등 살륙 당사자들의 혼령을 불러내게 했다.
망자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왜 어떻게 죽이고 죽임을 당했는지 이야기했다. 최초 상쟁의 이유였던 이념의 갈등도 나중에는 타락했다. 오로지 서로에 대한 감정 때문에 주검이 쌓여갔다.
황씨는 때로는 잔인하달 정도로 냉혹한 문체로, 때로는 죽음마저 승화시키는 더없이 서정적인 문장으로 소설을 이끌어갔다.
황해도 사투리로 이어진 문장에서는 독자들이 "읽어나가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문장의 깊이는 "역시 황석영"이라는 찬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류요섭 목사는 제가 미국 망명 시절 실제 만나 증언을 들은 인물이 모델입니다. 그를 만나 신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지요."
이번 작품이 또 빛을 발하는 부분은 그 양식이다. 소설 전체는 제의의 양식인 지노귀굿의 형태를 그대로 썼다.
생전의 죄업들을 구술하고, 망자의 넋두리를 듣고, 시왕(十王)을 불러내어 심판하게 하고, 마지막에 작가 스스로 뒷풀이 노래를 불러 영혼들을 떠나보냈다.
'불에 타 일그러지구 재가 된 귀신에/ 추럭에 기차에 마차에 땅크에 치어 죽던 귀신/ 오늘 많이 먹구 걸게 먹구/ 좋은 데루 천도를 하소사.'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라 서도까지도 동기에 담자는, 제가 생각한 서도동기(西道東器)의 소설양식을 최초로 실험한 작품입니다.
소설이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 양식이 '손님'에 무엇보다 맞춤한 것이라는 데 제 스스로도 만족했습니다"라고 황씨는 말했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의 내용도 사실 서양 민담을 끌어온 것 아닙니까. 우리 문학도 훌륭한 구비문학, 민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황씨는 '손님'의 완성으로 이제 "손을 좀 가볍게 풀어야겠다"며 "'오래된 정원'과 '손님' 두 편으로 그간 방북과 망명, 투옥으로 진 순문학활동에 대한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방송 개국 준비와 '오래된 정원'의 출판을 위한 일본 방문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올해 중반부터 "좀 가볍고 재미있는 소재"로 독자들과 만나겠다고 말했다.
'시라소니' 이후 한국 최고의 주먹으로 '민족깡패 방배추'라 불리는 방모씨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집필이 그것이다. '손님'에 이은 그의 솜씨와 입심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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