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가폭락은 미국 나스닥시장의 주가하락이 계기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의 경기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미국 경기둔화에 이어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이는 일본의 경기침체는 1997년 금융위기 이래 아시아 경제 전체에 최대의 위기로 닥칠 수 있다.
올들어 일본 경제는 곳곳에 경계 신호가 켜졌다. 우선 고질적인 소비불황이 조금도 풀릴 기미가 없다. 경기전망이 흐려질수록 주머니를 졸라매는 소비관행이 다시 경기불안을 부르는 악순환이다.
1998년 이래 꾸준히 떨어진 소비지출은 지난해 12월 모처럼 전년 대비 1.8% 증가를 기록했으나 1월에는 다시 0.5% 하락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경기회복을 주도했던 기업의 설비투자도 올들어 크게 줄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1,500개 기업의 설비투자는 11조5,000억엔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10조8,000억엔으로 6% 감소할 전망이다.
기업의 생산의욕 저하는 국내소비 부진뿐만 아니라 미국 경기의 후퇴에 따른 해외수요의 감소까지 고려한 결과이다. 올들어 무역수지가 줄어드는 등 해외시장 축소 조짐이 완연하다. 생산ㆍ소비 의욕의 저하는 벌써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4~6월기와 7~9월기의 GDP성장률이 잇달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0~12월기는 연말 특수에도 불구하고 0.8% 성장에 그쳤다.
내외의 부정적 요인에 따른 주가하락은 3월말 결산을 앞둔 금융기관의 손실을 늘려 금융불안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크게 우려되고 있다. 55조엔의 부실채권을 정리했지만 아직 60조엔 이상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가 1만2,000엔 아래로 떨어지면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평가손을 안게 된다.
정부ㆍ여당이 일본은행에 대해 주식 사들이기 정책을 요청하면서 양도세 감세 등 적극적인 증시 부양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우선 급한 불길을 잡자는 뜻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일본 정부는 그동안 경제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동반할 경우'로 엄격하게 규정해 온 디플레이션 정의를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의가 바뀐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진짜 디플레이션이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많은 기업들이 아직 부채처리에 허덕이는 등 금융부문이 취악해 내수부양에 집중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대 미ㆍ일 수출마저 둔화되는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인도네시아는 루피아화가 30개월만에 최저인 달러당 1만 1,500루피아까지 떨어져 제2의 외환위기마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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