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이야기'의 기(氣)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한국의 정치운세 이렇게 간다"는 긴 글을 썼다.90년 9월치 '신동아'잡지에 실려 있다.
때는 6공 노태우 정권의 3년차, 3당 합당으로 거대여당이 출현하고, 그 한 편으로는 2년 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통합 논의가 어지럽게 진행되던 무렵이다. 나라 밖에서도, 동(東)유럽권의 몰락, 걸프전(戰)의 전개 등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형세를 높은 곳에서 굽어 보며, 도올은 장담한다.
"사실 나는 점을 치는 데는 도사다. .김용옥의 철학적 혜안이면 국운(國運)인들 점치지 못할 손가?"
그의 그 때 점괘는 간명했다.
"혁명은 일어날 것인가. 일어난다. .기존의 권력은 무너질 것인가. 무너진다."
그가 말한 혁명은 '제2의 6월혁명'이다. 87년 대선에서 도둑맞은 6월항쟁의 성과를 다음 대선에서 되찾는다는 것이었다.
그 점괘의 근거는 동양철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다. '생물학 점'의 첫째 원리는 '사람'의 생물학적 조건, '생명의 주기(周期)'다. 이를 거론하며 도올은 이렇게 꼽는다.
"김대중은 지금 예순 여섯 살이다. 김영삼은 예순 네 살이다. 4ㆍ5ㆍ6공 지도체제가 버틸 수 있는 것은 10년도 아니 된다."
결국 그의 6월 혁명 점괘는 이들의 워크아웃(walk - outㆍ退場)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도올의 생물학이 상정 못한 것은 또 다른 워크아웃(work - out ㆍ再生)이다. 더하여 그는 그 워크아웃의 달인(達人) "김종필 예순 다섯 살"을 간과했다.
이 것이 도울 점괘의 치명적 결함인 것은 이미 현실로 증명이 됐다.
김대중은 워크아웃 뒤의 또 다른 워크아웃으로 청와대 주인이 됐다. 누릴 것 다 누리고 워크아웃 한 듯 했던 김영삼은 목하 또 다른 워크아웃의 숨을 고르고 있다.
김종필은 워크아웃과 워크아웃을 거듭한 끝에 지금 정권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도올이 '10년도 아니 된다'던 세월이 그렇게 흘러 갔고, 그의 점괘는 빗나갔다.
그래도 도올 점괘가 시차(時差)를 두고, 반(半)이라도 적중할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것은 우리 정치판의 움직임이 노소합종(老少合從)으로 간 경우다. 그러나 현실은 DJP라는 이름의 노소연횡(老少連衡)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로 축이 뻗어서, YS를 포함한 '삼노(三老)연횡'을 이루고, 그 입김이 차기(次期)에까지 미친다면 어찌 될까. 아무래도 "태조 왕건(太祖 王建)"의 후3국시대처럼 진진한 볼거리가 못될 것만은 틀림이 없다. 벌서부터 도올 도사의 실색한 모습이 어른 거린다.
하지만, 우리가 입맛을 다시는 까닭은, 결코 도올 도사의 점괘가 들어맞지 않았대서가 아니다.
지금의 '노소연횡'은 곧 정치실종을 뜻한다. 그 것은 지난 연말 대통령의 국정쇄신 약속을 저버린 변칙이다.
이 뿌리에서 국회의원이라는 또 다른 변칙이 새끼쳐 나왔고 지금은 장관자리 분점(分占)을 둘러싼 '아니 땐 굴뚝의 연기'만 자욱하다.
그 틈에 여ㆍ야 상생(相生)은 물건너 갔고, 남은 것은 헛기침 같은 '강한 정부' 표방과, 정권 재창출이란 철 이른 다짐 뿐이다. 이런 것을 과연 정치라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노소연횡' '3노연횡'의 그림자는 우리 정치의 앞날마저 비관하게 한다. 그런 시나리오는 우리 정치의 지역구도, 1인 보스 정당의 온존을 전제로 한다.
이 시나리오대로 하면, 정치개혁은 가망이 없고, 정치개혁 없이는 국정쇄신, 국민통합이 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 새해 들어 더욱 얽히고 있는,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헤쳐 갈수가 있을까.
오늘의 우리 정치가 텔레비젼 드라마라면, 얼른 꺼버리고 싶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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