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영화' '여성영화' 라는 구분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과거와 달리 장르에 따른 남녀의 기호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그렇더라도 여전히 '선물'은 여성적이고, '친구'는 남성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제목에서부터 그런 이미지를 풍긴다. 3월 한국영화는 이 두 편으로 '번지점프를 하다' (서울 42만명)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부진을 씻으려 한다.
사내넷 20년 걸친 진한우정
●친구
좋은 남성 영화 한 편이 필요한 때도 됐다. 절제가 아니라 미진한 멜로 영화에 관객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남자 네 명의 이야기인 '친구'는 이 점에서 시기가 적절하다.
'친구'는 1976년부터 1996년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의 프리즘을 통과한 우정의 변천사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부산'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 이들을 갈라 놓은 것은 '운명' 이었지만, 운명을 인수분해하면 그 해(解)는 '필연'에 가깝다.
조직폭력배의 아들이자 학교에서 가장 센 주먹이었던 준석(유오성), 장의사의 아들 동수(장동건), 우등생 상택(서태화), 어머니가 밀수를 하는 중호(정운택)는 추억이 같다.
소독차 꽁무니를 따라다녔고, 포르노 테이프를 함께 처음 보았으며,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빠를까를 놓고 입씨름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은 이들의 삶을 변질시켰다. 대학생이 된 동수가 준석을 찾았을 때 그는 히로뽕에 절어 폐인에 가까웠고, 동수는 감옥에 있었다. 그 후 준석과 동수는 다른 계파를 이끌게 되며 끔찍한 운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친구끼린 미안한 거 없다."(준석), "내가 니 시다라비가?"(동수) 이 말은 '친구'를 정의하는 또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준석에게 상택은 '가지 못한 길' 의 상징이었고, 상택을 끼고 도는 준석을 보는 '2인자' 동수는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집단은 '우정'을 지향하되, 그 안에는 힘의 균형과 콤플렉스와 욕망이 자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은 화해하거나 갈등하고, 서로 보듬거나 상처를 입힌다.
부산은 영화의 중요한 조연이다. 영화에서 이 도시는 밀수와 마약, 조직폭력배의 근거지이자 남자다운 우정의 도시이다. 36곳을 찔린 동수가 죽어가며 하는 말 "많이 묵었다.
고마해라", 친구들의 구명운동에도 아랑곳없이 죄를 자백한 준석이 이유를 묻는 친구들에게 "쪽 팔려가" 라고 답하는 장면은 부산 사투리가 아니면, 제 맛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냉동창고에서의 거친 살해 장면, 무뚝뚝한 부산 사투리, 갈등의 주체이자 대상인 남자들이 '친구'를 강력한 남성영화로 만든다.
'조폭'에 대한 관습적인 엿보기나 일련의 '복고취향'이 영화적 결점인 동시에 '즐거움'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의 말
영화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옛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왔다. 돌아갈 수는 없으나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전작 '닥터K'에서의 어줍잖은 멜로 설정을 많이 반성했다.
그냥 친구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하고 싶다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창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1999년 3월, 1주일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죽어가는 아내에 어떤 선물…
●선물
아내 정연(이영애)은 불치의 병에 걸려 곧 죽는다. 스타가 되려고 애면글면 하는 무명의 개그맨인 남편 용기(이정재)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내는 남편이 그 사실을 죽는 날까지 모르기를 바라지만, 어느날 남편은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
그들 사이에 무슨 많은 말이 필요할까. '선물'(감독 오기환)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줄을 잇고 있는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전형적이란 말은 과거 '미워도 다시 한번' 류를 조금 변주시킨 2000년대식 멜로를 의미한다.
용기는 부잣집 아들이고, 정연은 고아라는 신분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비극의 중요한 장치는 아니다.
대신 '하루'에 이어 '죽음' 이란 불가항력적이며 극복 불가능한 상황이 슬픔의 요소로 등장했다. 과거와 달리 사랑과 슬픔의 주체를 남성으로 설정해 여성을 능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 제도적인 관계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이야기를 엮어간다.
'선물'은 이런 공식을 따라 두 사람이 끝내는 죽음 앞에서 절규하게 만든다. '선물'은 그 절규를 '편지' 와 '약속'처럼 직접 보이지 않는다.
웃음속에 눈물을 감추고 웃음으로 눈물을 크게 한다. 개그맨 이정재는 그것을 위해 몸무림친다. 그의 몸부림은 마지막 개그 콘테스트에서 웃기는 몸짓에 눈물로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으로 살아난다.
그 모습을 보며 객석에서 숨을 거두는 아내 정연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영화는 한줄기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루' 보다는 훨씬 일상성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고, '편지' 보다는 은유와 상징의 묘를 갖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물'이 최근 한국멜로영화에 나타나는 단점들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회상은 상투적이고, 곳곳에서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정연을 시부모가 갑자기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정연의 모습은 너무나 봉건적 발상이다.
초반 조연들(권해요 이무연)의 두드러진 코믹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웃음과 울음의 대조법이 무너짐으로써 영화는 끝까지 뒤뚱거린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선물'은 배우들의 연기가 그것을 메워주며 슬픔을 살려나간다.
처음 아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이정재의 어이없음, 놀람, 절망, 슬픔으로 이어지는 짧은 순간의 눈빛변화와 "난 아니야" 라고 절규하는 이영애의 모습은 멜로영화가 배우들의 것임을 말해준다.
이정재도,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서툴었던 이영애도 멜로영화의 연기리듬을 어떻게 풀어야 눈물이 많아지는지 아는 듯하다.
감독의 말
처음에는 아이러니를 깊게 파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너무 작가적인 영화가 될까봐 대중적 코드로 바꿨다. 웃음과 울음의 대비가 잘 되지 않아 아쉽다. 톤을 일관되게 가지지 못했고, 디테일이 부족한 탓이다. 이정재의 개그에 대한 준비부족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투박한 감정이 '선물'의 장점인지 모른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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