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중앙' 봄호에 황인숙(43)씨의 시 아홉 편이 실려 있다. '작은 시집'이라는 섹션에 묶인 이 시들은 거의 모두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가편(佳篇)이다.그러나 이 시인의 발랄하고 감각적인 초기 시들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작은 시집'의 시들에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의 매몰찬 풍화 작용을 실감할 것이다.
황인숙씨는 본디 움직임의 시인이고 경쾌함의 시인이다. 그는 붙박이가 아니라 떠돌이다.
시인은 시업(詩業)의 앞자리에서 자기 감각의 그 가벼운 움직임을 고양이의 몸놀림에 의탁한 바 있다.
이번 '문예 중앙'의 시편들에도 그런 날래고 경쾌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꿈들'이라는 시의 "구름의 거대한 성곽/ 위에 커다랗게, 커다랗게/
떠오르는/ S-A-N- T-A M-A-R-I-A/ 하늘의 파아랑! 구름의 하아양!/ 터지는 심장!"같은 구절이나, '그 때는 설레었지요'의 "그 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같은 구절들에는 감각의 부력(浮力)에 실린 마음의 가볍고 날랜 움직임이 또렷하다.
그러나 그 시들에서조차 그 가벼움은 자신의 꿈이 아니라 친구의 꿈일 뿐이고, 그 움직임은 현재의 움직임이 아니라 과거의 움직임일 뿐이다.
그는 어느덧 붙박이가 되어, 달리는 바람 소리를 "집 안에서/ 귀기울여 듣"거나,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꿈을 꿀 뿐이다.
다른 시편들에서, 시인은 젊음이 빠져나가 버린 실존을 노래한다. 예컨대 "내 기억이 포개진 수많은 주름/ 속에 포개진 균열//
그 단애에/ 헐벗은 나무가 서 있다"('주름과 균열')거나 "나는 이미 흔적일 뿐/ 내가 나의 흔적인데/ 나는 흔적의 서민/ 흔적 없이 살아가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노인') 같은 구절에선 젊음이 아득하다.
시인은 신생(新生)의 대척점에 있다. 특히 노인을 화자로 삼은 시 '노인'에서 그렇다. 이 애틋하고 섬연(纖姸)한 시에서, 시인은 노년의 목소리로 어떤 미래를 노래한다.
아니, 시인은 어쩌면 현재를 샐그러뜨려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의 화자는 자신을 '감정의 서민'이고, '행위의 서민이며', '잠의 서민'이고, '기억의 서민'이며, '욕망의 서민'이고, 그래서 결국 '생의 서민'이라고 말한다.
무섭고 가엾어라, '감정의 서민'이라니. 그것이 시인 자신을 가리킨 것이라면, 시인은 시 쓰기의 폐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시인의 몸을 이렇게 움츠러뜨렸을까? 그러나 기자는 시인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작은 시집'에 묶인 시 아홉 편은 황인숙씨가 여전히 감정의 귀족임을, 시간 속에서 더 무르익은 시인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무감각 마저 감각적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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