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 방지법안 처리문제가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FIU(금융정보분석원)라는 막강한 파워를 지닌 새로운 권력기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이 법은 당초 조직폭력ㆍ마약ㆍ무기거래 등을 겨냥한 '깡패잡는 법'이었기 때문에 정치권은 FIU설치를 양해했다.
그런데 정치자금이 포함되면서 갑자기 이 법이 '정치인 잡는 법'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정치권을 엄습하고 있다.
'의심가는 거래'라는 모호한 잣대로 영장없이 계좌추적을 할 수 있으니 권력기관이 마음대로 정치인 또는 정당의 후원회 계좌까지 뒤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정치권은 정치자금 문제에 이미 정신을 빼앗겼다.
반면 정부측은 정치자금 논란과는 별개로 FIU가 '세금만 축내는 하마'로 전락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다.
한 정부관계자는 " 금융기관 직원이 FIU에 의심가는 거래를 신고할 때는 합당한 근거를 문서로 제시해야 한다"면서 "정치자금이든 무슨 돈이든 '어떤 죄를 범한 돈'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근거를 댈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중 삼중으로 FIU에 대한 제동장치를 걸어놨기 때문에 특이한 돈세탁 행위만이 신고대상이 되고, 은행창구의 적극적 협조가 없을 경우 자칫 외국기관의 국제범죄 제보에 의존하는 '한가한 기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야당의원은 이 법의 처리여부를 논의한 의총에서 "법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반대"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이 법을 다루는 태도가 감정적이고 단세포적임을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국회가 FIU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FIU를 적절히 견제하면서도 실효를 거둘 수 있게 하는 여러 쟁점들을 다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정치자금을 둘러싼 보완책 논의는 쟁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국회는 시민단체 등 여론을 의식해 공청회만 한번 열고 본질적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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