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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도자가 너무 똑똑하면

입력
2001.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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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많이 안다. 원래 공부를 많이 하는데다, 임기 4년차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으니 얼마나 많이 알겠는가.아마도 웬만한 부처 장관 보다 그 부처의 업무를 잘 알 수 있겠다. 장관은 자주 바뀌고 대통령은 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더욱 그러하다. 장관이 6번 바뀐 교육 인적자원부에 대한 현안 파악은 DJ가 한완상 부총리보다 한 수 위일 것이다.

DJ는 상고 졸(5년제) 학력이지만, 경제 이론서를 쓸 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 '대중 경제론'은 남이 쓴 것에 이름만 올린 게 아니라 진짜 그가 쓴 책이다. 틈 나면 골프 치고, 산에 오르는 사람과는 영 판 다르다.

DJ는 국정을 많이 챙긴다. 그가 국무회의 등에서 내리는 지시를 보면 많이 챙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DJ는 국무회의를 거르지 않고 주재한다.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다. 전 정권 때까지 국무회의는 대통령 위임을 받아 총리가 주재하는 게 관례였다. 국민의 정부 총리는 그래서 더욱 머쓱하다.

그런 그가 임기 4년차를 맞았다. 국정에 자신감을 가질 시기다. 지금 정부안에 정무직으로 바뀌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 외에 별반 없다.

그러니 국정을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아랫사람이 탐탁치 않게 보일지 모를 일이다.

나는 잘 하는데 장관들이 뭘 잘못하고 있다, 신문이 공연히 비판만 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이 미칠 수 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을 몰라 준다는 서운함도 생길 것이다. DJ는 자연의 나이에서도 쉽게 서운함을 느낄 때다. 노인들은 원래 잘 삐 진다.

DJ는 지금 어렵다.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그의 최대 업적인 남북관계에서 시련을 당할 판이다. 부시대통령은 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잔뜩 손 볼 태세다.

여기다 경제가 좀처럼 살아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할 것 다했는데도 그렇다. 임기 내 경제를 회복하지 못하면 DJ도 YS처럼 되기 십상이다.

경제는 곱하기 제로와 같다. 다른 걸 잘해도 경제가 엉망이면 평가는 빵점이 된다. 전임자들이 좋은 본보기다.

독재자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여전하고, 그의 딸이 일거에 야당 부총재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정치도 불안하다. 더구나 레임덕 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여권의 대권 레이스다.

대권 레이스는 권력의 힘으로도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6공 때도 그랬고, YS때도 그랬다. 6공 때는 YS가 선두에서 치고 나섰고, YS때는 9룡이니 7룡이니 하면서 떼로 나서 YS의 힘을 뺐다.

이럴 땐 권력내부에서 자연히 갈등과 알력이 생기고, 그 틈에 강경파가 득세를 한다. 그런 조짐이 벌써 나타났다.

DJ는 두 측면에서 유념할 것이 있다. 하나는 대통령으로서, 또 다른 하나는 자연인으로서. 우선 대통령으로서는 '평범한 왕도'를 걷는 것이 좋겠다.

그 동안 많은 것을 했으니, 더 무엇을 보여 주겠다고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시간적으로 그럴 여유도 없다.

지금쯤 아랫사람에게 넘길 것은 넘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너무 똑똑하지도 않고, 너무 챙기지도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것이 좋겠다. 가급적 노인의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싫은 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맨 날 공부만 하지 말고 적당히 쉬기도 해야 한다. DJ는 7순 중반을 훌쩍 넘은 나이다. 대통령이 편안해야 국민도 편안하다.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부었는데도, 국민과의 대화를 위해 TV 카메라 앞에 나왔다는 말은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DJ는 지금부터 '똑똑하지만 약간 게으른 지도자'의 길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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