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는 더 이상 가상의 공간이 아닌 우리 눈 앞의 현실이다. 최근 인터넷 상의 자살 사이트,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젊은이들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사이버스페이스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음을 말해준다.이 사이버스페이스란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미국의 SF작가 윌리엄 깁슨(53)이다.
SF의 세계에서는 고전으로 자리잡은 1984년작 소설 '뉴로맨서'에서 이 단어와 개념을 처음으로 설명했던 깁슨의 가상세계는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 됐다.
깁슨의 이름은 그간 일부 SF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었다. 처녀작인 '뉴로맨서'로 이른바 '사이버펑크' 문학의 기수로 떠오른 그였지만 정작 이 작품이 국내 알려진 것도 90년대 들어서였다.
이번에 번역된 96년작 장편소설 '아이도루' (사이언스북스 발행ㆍ사진)는 사실상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깁슨의 작품이다.
깁슨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인간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격게 될 부조화 내지 부적응 상황을 그린다.
'사이버펑크' 는 바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제도권에 저항하는, 개성과 기술력을 지닌 아웃사이더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현실과 가상현실이 혼재하는 문명의 가장자리에서 정신적ㆍ육체적 자유를 갈망한다. 깁슨이 말한 이 사이버펑크의 개념도 문학뿐 아니라 대중음악과 미술 등 1980년대 이후 거의 모든 문화의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아이도루'의 주인공도 능숙한 컴퓨터기술을 이용해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찾는 사이버펑크 족이다. 아이도루는 우상을 가리키는 영어 idol의 일본식 발음.
줄거리는 가상의 사이버 아이돌 스타와 결혼을 선언한 한 록밴드 리드 싱어의 이야기다. 얼마전 한국에도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을 향해 실재 인간이 구애한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록밴드 리드 싱어 레즈는 사이버 아이돌 가수 레이와 결혼을 선언한다. 레이는 고성능 플랫폼에서 실행되는 거대한 정보의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정보를 습득해 진화하고 꿈까지 꾸게 된다. 이들을 방송사와 마피아들이 뒤쫓으며 음모와 추적이 벌어진다.
깁슨은 이런 줄거리를 통해 스타와 미디어의 관계, 가상 현실과 실재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생생한 현실감으로 묘사해 낸다.
그가 묘사하는 미래 세계는 음울하고 비관적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가 추구하는 미래의 모습은 그 반대편에 있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인간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주인공들로 하여금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인간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가 20여년 전부터 예견했던 새로운 기술과 문명은 소설 속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어 오히려 새롭거나 낯설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낭만적' 문장이 이어진다.
두 주인공은 결국 결혼한다. 그들의 결합이 이루어낼 새로운 세계는 어떤 것일까? 깁슨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들이 해 내면 나는 꼭 가볼 거야." 인간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지, 그 현실화는 어느만큼 가능한 것인지 깁슨의 세계를 따라 '가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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