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객 용비호(龍飛虎)를 찾아라."두어달 전부터 중국 컴퓨터 바둑계에 나돌고 있는 긴급 수배 전단의 내용이다.마치 중국 무협 소설의 주인공처럼 '용비호'라는 고풍스런 별호(아이디)를 가진 정체불명의 고수가 최근 강호(컴퓨터 바둑계)에 등장, 각 문파(사이트)의 무림 고수들과 비무 행각을 벌이고 있는데 각 파 장문인급(프로기사) 고수들도 여지없이 나가 떨어지고 있어 중원에 피바람이 일고 있다는 것.
용비호는 작년 하순에 처음 아마 9단 자격으로 '청풍' 인터넷 바둑사이트에 등장했는데 아마 9단급 고수(보통 프로기사들이 익명으로 대국할 때 아마 9단을 사용함)들을 잇달아 격파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용비호는 한국의 아마 9단에게도 쾌승을 거둔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청풍'의 호법(프로 지도 사범) 뤄시허 8단이 그를 '혼내 주기 위해' 정식으로 프로기사라고 밝히고 나섰다가 뜻밖에 4연패를 당하면서부터 사건이 커졌다.
당시 두 고수의 대결 현장에는 100여명의 무림인(넷바둑 동호인)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뤄 8단의 참패 소식은 즉각 강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뤄 8단은 중국이 자랑하는 '6소룡'가운데 한 명으로 특히 속기에는 전국 3위 이내에 든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정상급 고수. 그런데 정체불명의 방랑기객에게 일패도지했으니 대망신이 아닐 수 없다.
용비호는 작년 말 마지막으로 청풍 사이트에 나타났다가 "시간 있으면 다시 들를게"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사문(아이디 주소)이 중국이라는 것만 확인됐을 뿐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중국 바둑계에서는 용비호가 실재 인물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유력한 용의자로 녜웨이핑, 마샤오춘, 창하오, 위빈 9단이나 양사해 8단 등 정상급 프로기사나 위기소년대 소속 청소년 기사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다.
또 일부에선 한국의 이창호 9단이나 일본의 정상급 기사, 아마 고수들의 연합, 심지어 수퍼 컴퓨터까지 용의선 상에 올리기도 하지만 아직 용비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이상은 중국의 바둑 월간지 '위기천지' 3월호에 실린 특집 기사 내용을 간단히 요약, 소개한 것이다. 어찌 보면 가십거리에 불과한 소재를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으로 침소봉대했다는 느낌도 있지만 과연 요즘 중국의 바둑 열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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