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모국 스웨덴에서 견공(犬公) 수입업자로 낙인찍힌 일이 있다. 사정은 이렇다.몇 달 전 나는 서울에서 "스웨덴에서 파는 한ㆍ중ㆍ일 요리가 원산지와는 맛이 다르다"는 불평을 담은 이메일을 스웨덴 보건국에 보냈다.
재미로 혹시 스웨덴에 개고기 수입이 허용되는 지도 물어봤다. 두 달이 지나도 답장이 없자 나는 이곳에 메일을 다시 보냈다.
답변을 안하는 것은 '옴부즈만'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지난번 스웨덴에 갔을 때 개고기를 갖고 갔었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며칠 후 스웨덴의 한 여기자가 내 편지를 봤다며 아시아 음식 특집기사를 쓰겠다며 전화 인터뷰를 요청해 응했다.
그 기자는 스웨덴의 한ㆍ중ㆍ일 요리 맛이 형편없다는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맛있는 한국음식을 추천해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스웨덴의 개고기 수입 허용 여부를 묻고, 개고기를 갖고 귀국했다는 내용을 농담인 줄 모르고 인용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다른 스웨덴 기자들이 서울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공교롭게 나는 그때 스웨덴에 있었고 '개고기 수입'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못했다.
스웨덴 신문들에는 '서울의 스웨덴 교수, 개고기 수입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 이어 '서울의 스웨덴 교수, 개고기 수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스웨덴에서는 유럽연합에서 도축된 고기 말고는 수입이 불가능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스웨덴 행정기관의 정보가 얼마나 개방돼 있는지를 방증하는 예다.
그 여기자가 내가 당국에 보낸 편지를 볼 수 없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스웨덴에서는 국익에 관계된 것, 개인의 병력이나 특수한 재판 결과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가령 자동차 번호 하나만 정확히 알아도 국립자동차등록소에서는 소유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줄 것이고 인구청에서는 소유자의 출생지와 주민번호, 결혼 여부, 자녀 수를, 세무당국에서는 연간소득과 납세실적도 알려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있으면서 나는 30년 전 헤어진 친구를 찾기 위해 스웨덴 정부에 연락해 몇 시간만에 찾은 적도 있었다.
스웨덴인들은 이처럼 자유로운 정보 접근권을 주로 정치인, 공무원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당국에서는 시민이 요구하는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반드시 알려줘야 하고 담당 공무원이 편지나 전화로 답변을 해야만 한다.
이런 권리를 '옴부즈만'이라고 부른다. '시민의 대표자'라는 원의를 가진 옴부즈만은 원래 40년 전 시민들의 불편이나 항의를 받아주는 독립적인 기관의 이름이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입후보자의 정보를 얻기 위해 고생했던 것으로 안다.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여기는 스웨덴인으로서는 입후보자의 정보를 얻기 힘든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항공사, 컴퓨터회사 등에 전화를 걸어 특정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 이상 원하는 대답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누구라도 시청에 가서 요구만 하면 시장이 여행가서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영수증을 볼 수 있다.
이런 개방적 시스템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같은 북구 국가들의 자랑거리다. 몇 년 전 스웨덴의 한 여성 총리는 정부의 신용카드로 초콜릿과 유아복을 산 일이 드러나 실각한 적이 있었다.
일반인들이 고위 관료나 정치인의 전화번호를 얻어 그의 집으로 전화거는 일도 전혀 어렵지 않다. 이런 '정보접근'권리야말로 개방사회의 지표인 동시에 권력의 오남용과 비리를 막는 민주주의의 정수가 아닐까. 한국도 스웨덴처럼 더 많은 정보가 개방돼야 할 것이다.
스벤 올로프 올손 한국어대 스칸디나 비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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