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길에 오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1일(한국시간) 서울로 향하는 특별기 기내에서 뭔가를 메모하며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이정빈(李廷彬) 외교부장관을 불러 한미 정상회담을 복기하기도 하고 김하중(金夏中)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보고도 받았다. 귀국 길에서조차 일손을 놓지 못하는 모습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김 대통령에게 '미완의 회담'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김 대통령의 고심은 클린턴 행정부와 현격하게 다른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남북관계를 풀어가고 한미간 대북정책을 어느 수준에서 합치시키느냐이다. 아울러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복잡한 외교 각축전 속에서 미ㆍ일ㆍ중ㆍ러의 4강 외교구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도 숙제이다.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앞당겨 한반도 긴장완화, 나아가 냉전종식과 평화구축까지 이룩하고자 했던 구상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 갈수 밖에 없게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원론적으로 지지했다 해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바뀌지 않고 북한을 '불량국가'로 취급해 압박전략을 구사하는 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속도와 효력은 반감할 수 밖에 없다. 남북이 관계개선을 추진해도 북미관계가 틀어지면 한반도는 긴장국면을 벗어나기 힘든 게 냉엄한 현실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의 간극을 좁히는 설득작업에 당분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후 각종 간담회에서 '북한에 세 가지를 주고 세 가지를 받자'는 포괄적 상호주의를 설명하고 '한국은 재래식무기 감축,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북한과 협상하자'는 역할 분담론을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 북한에 대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미국이 비중을 두고 있는 미사일 문제의 해법을 내놓으라고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 것을 조언할 가능성도 높다.
북한이 당장 자세 전환을 하기는 힘들지만, 뉴욕을 통해 미국에 접촉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의미에서 13일 시작되는 남북 국방장관 회담은 북한의 반응과 변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가 될수 있다.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긍정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조의 틀을 적극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으나 이는 정서적 측면이 강하고 정교한 분석에 기초한 것이 아닌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미사일 문제의 해법에 거의 도달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전환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함께 김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야당과 국내 보수세력대한 설득작업을 좀 더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됐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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