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실업 자체도 사회문제지만, 실업에 따른 정신적 황폐화 현상도 심각하다.현재 100만명에 달하는 실직자와 그 가족들 상당수가 감당키 힘든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방치할 경우 실업문제와는 또다른 차원의 사회 병리현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심각한 실직 후유증
노동부 산하 서울 서초 고용안정센터의 상담원 김유숙(28)씨는 박모(50)씨만 찾아오면 답답하다. 부도로 빚을 진 채 가족과 떨어져 월세 단칸방에 사는 박씨는 아무리 직업을 추천해도 그저 먼산만 바라보며 냉소를 흘릴 뿐이다.
김모(40)씨는 정반대의 경우. 최근 모 인력은행에 찾아온 그는 상세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무조건 고용보험료를 내놓으라"고 3시간여 동안 집기를 부수며 '난동'을 피웠다.
이미 정신적으로 문제가 나타난 이런 이들이 요즘 실직자 상담창구나 병원들에서는 흔하게 목격된다. 서울 이상일신경정신과의원은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런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실직한 뒤 돌연 주변에서 견디기 힘들만큼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멍하니 시간만 죽이는 게 대표적 유형"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그대로 놔둘 경우 알코올중독이나 타인기피증 등으로 발전, 끝내는 현실감각마저 상실한채 영원한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높다.
경인근로자복지연구소 노태영(盧泰永) 소장은 "실업후유증 환자들은 대부분 완전히 '망가진' 후에야 병원을 찾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않다"며 "노동 및 보건당국의 실직자 정신재활 프로그램 등 체계적인 사회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주부들은 실업 우울증
지난 연말 퇴출된 남편을 보며 '내 탓' 생각에 잠을 못이루던 주부 김모(51ㆍ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지난달부터 신경정신과를 찾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가장만을 의지해온 주부에게 남편의 실직은 '자아 상실'이나 마찬가지. 병원마다 남편의 실직이나 퇴출위기로 인한 정신적 증세를 호소하는 주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주부 오모(47ㆍ서울 서초구 양재동)씨는 올해 초 남편 실직 뒤 상실감과 노후불안 등에 따른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병원치료를 받고 있고, 은행원 남편을 둔 한모(45ㆍ경기 고양시)씨도 "구조조정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뛰고, 심하면 혼절"해 신경정신과 치료 중이다. .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조현주(曹鉉珠) 연구원은 "'실업우울증'을 호소하는 주부들의 상담요청이 최근들어 급증하고 있다"면서 "우선 가족간 대화를 늘리되, 우울증세가 나타날 경우 지체말고 전문가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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