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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 사람] 386세대 국회의원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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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 사람] 386세대 국회의원 임종석

입력
2001.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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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의 후진성, 정치개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신문사 동료가 "정 국장, 386세대 정치인을 만나봐야 되는 것 아니오? 개혁을 하겠다며 정치판에 뛰어든 그들이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를 한 번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소"라고 말했다.국회의원 임종석(任鍾晳)을 만난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올해 만 서른 다섯으로 현역 국회의원 중 가장 젊다.

이왕 젊은 정치인을 만나기로 한 것, 그렇다면 가장 젊은 사람을 만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전대협(全大協)의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으로 이름이 난 그이기에 정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_국회의원이 된지 열 달이 됐다. 무엇을 느끼나.

현실정치, 제도정치가 나에게 힘겨운 건 사실이다. 특히 합의가 어려운 게 답답하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참여했던 시민운동과 비교하면 국회가 뒤진다.

시민운동에는 합의에 이르기 위한 '룰에 대한 합의'가 있으나 국회는 그런 점이 미흡하다. 시민단체는 같은 취지 아래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국회는 다양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차이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국회는 타협과 조정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참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운동을 했던 정치인은 누구나 그런 차이를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_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봐라.

"민주당 교육위원회가 추진하다 변질된 사립학교법이 예가 될 것이다. 교육위원 전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의 실증적 경험을 토대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 추진한 것인데 엉뚱하게 최고위원회의에서 변질됐다. 이런 건 시민단체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_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당의 권력이 상층의 소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_임 의원이 의장을 맡았던 전대협도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나. 의장님 한 마디가 모든 걸 좌우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않나.(이 질문은 일부 학생운동이 기성정치판의 행태를 닮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해본 것이다.)

"잘못 알려진 것이다. 당시 전대협 의장에게 위임된 권위는 컸겠지만 그 권위는 철저한 민주적 기반에서 위임됐다. 중요한 문제는 수 없는 밤샘 토론을 거쳐 결정했다.

아주 하찮은 소수의견도 공식회의록에 첨부해 중앙회의 결정으로 지방 학교에 보냈다. 조직의 상징으로 의장에 위임된 권위는 컸지만 결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정치권에 들어올 때 환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을 할 때 국민의 합의를 업고 추진했다고 생각한 일도 국회에서 막히는 걸 보았기 때문에 환상은 없었으나 실제 정치판에 들어와보니 무슨 일 하나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_다수 국민은 '국회가 제일 비효율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뜻인가.

"그렇다. 최근 들어 국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아직은 이유 없는 정쟁, 지역을 볼모로 하는 정당구조 때문에 미흡하다. 16대 국회법은 여야합의를 기초로 선진화된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쟁의 도구가 됐다."

_그런 입장에서 앞으로 당신들은 무슨 일을 할 건가.

"국회에 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분위기, 본회의에서는 자유투표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에도 그런 시도가 있기는 했다.

새만금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지난번 예산심의 때 나를 포함해 민주당에서 몇 명이 기권을 한 일이 예가 될 것이다." 그는 "올 상반기 중 본회의에서 논의될 안건 중 많은 것이 그런 분위기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_그러다 보면 다음 선거 때 공천에서 탈락하기 쉽겠다. 지도부의 미움을 받아서.

"아하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수도권 민심을 보았다면 공천기준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는 공천권자가 아니라 유권자를 무서워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에 의해 유권자들이 의정활동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더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됐는데 유권자를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부의 마음보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_지금까지 한 말로보면 정치가 답답하고 짜증이 나지만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말 같다.

"정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행위다. 정치에서의 조그마한 차이(잘못)는 국민생활에서 아주 큰 차이(불편)로 나타난다. 그래서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를 무기력하고 불필요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능한 정치인과 무심한 유권자의 잘못이다. 다행인 건 여야 공히 신념과 소신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_정치자금은 얼마나 쓰나, 어떻게 충당하나.

지구당 운영비는 당비로 충당한다. 아마 내 지역구가 전국 모든 지역구 중 당비가 가장 잘 걷히는 곳일 것이다. 나도 세비에서 한 달에 2백만원을 낸다.

지구당 운영비 외에 국회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매달 천만원이 들어가는데 후원회비와 친구, 선후배의 도움으로 충당한다."

_그렇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글쎄,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야 하지 않나. 누구를 소개하는 정도,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얻게 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_정치인 중 이상형이 있나. 닮고 싶은 정치인이 있나.

"누구라고 딱 집어낼 만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정치인의 이런 부분, 저 정치인의 저런 부분은 배웠으면 하는 건 있다.

인격적으로는 존경할 만한데 현실 정치력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고, 현실 정치력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는 사람이 있더라. 나도 골고루 좋아질 수는 없을 것이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을 것 같다."

_학생운동을 하다 정치인이 된 사람들에게 '정치인이 되기 위해 학생운동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지 않나.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대체로 잘하지 않고 있느냐. 그걸로 대신하겠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그런데 학생회장도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정치인이 되려는 목적으로 학생운동을 한다는 건 바로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학생회장을 경험하면 사람과 조직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우니 현실 정치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을 이었다.

_다른 386에 정치인에 비해 지난해 덜 튀었다는 말이 있더라.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

"언론플레이가 문제다. 초선의원들의 활동에는 빼놓지 않고 참여했는데 그런 활동 대부분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언론에 터지곤 했다.

나는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의 경험으로 토론을 거쳐 결정하고, 발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결정도 되기 전에 공개가 되니 그것도 모르고 오직 합의를 구하려 노력한 사람은 아무런 활동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타이밍은 다른 것 같다. 언론에 보도되는 게 일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다. 보도된 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초선의원들의 모임이 지속적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_민주당은 사실상 1인 중심 정당이다. 이 구조를 깰 수 있는가.

"좀 나아졌지만 상임위의 분과위원회에서 수립된 기본정책을 의원총회나 당무회의에서 의결하는 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중심, 1인 구조의 정당구조가 이념과 정책을 따라 재편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까지는 한 5년이 걸릴 것 같은데 다음 대선을 치루면 그런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지연 학연 혈연에서 일찍 벗어날수록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_부총무는 왜 그만 두었나. 다들 당직을 맡으려고 한다는데.

"과거처럼 몸싸움하는 돌격대 일은 안 했지만 소모적인 5분 발언에 차출되는 게 싫었다. 그런 일은 내 목소리를 내는데 너무 불편하다."

_정치 입문 시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나.

"세 가지다. 하나는 자금이나 의정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처를 지역구 관리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혼하면서 처와 각자 자신의 일과 꿈은 갖도록 하자고 약속한 걸 지키기 위해서다. (그의 부인은 환경운동가다.

환경관련 저서를 두 권이나 냈다.) 나머지 하나는 지역구의 상가와 결혼식에는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두 지키고 있다."

_위에는 대들고, 지역구는 버려놓고, 그래서 장래가 보장되겠나.

"지역구활동보다 의정활동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는 의원이 많다. 내가 처음이 아니다.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소신 있고 바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젊은 정치인에게 유리하다."

그와 두시간 가까이 나눈 대화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유권자를 먼저 생각하고, 지역보다는 이념과 정책 중심으로 정치판이 새로 짜여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기성 정치인들도 항상 하는 소리지만 그의 입을 통해 들으니 새로운 맛이 안 나는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인사 삼아 "열심히 하소. 이사를 갈 일이 생기면 당신 지역구도 생각해보겠소"라고 말하곤 일어섰다.

편집국 부국장

so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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