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퇴임하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의 상처뿐인 집권 1년은 일본 국민에게 지도자의 자질을 새삼 생각하게 했다.지난해 4월 뇌경색으로 사망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를 때만 해도 자민당 5역의 밀실 담합이 문제가 됐을 뿐 모리 총리 개인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총리로 취임하던 지난해 4월 5일 닛케이(日經) 평균주가는 2만 462엔 까지 치솟았다. .
그는 와세다(早稻田)대 웅변회 후배인 오부치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지도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소탈하고 원만한 성격상 자민당의 화합과 정치 안정에는 적임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ㆍ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와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 전 외무 장관, 미쓰즈카 히로시(三塚博) 대장성장관으로 이어진 제3 파벌을 오랫동안 이끌어 온 관리 능력도 오부치 전 총리와 닮은꼴이었다.
다만 와세다대 럭비부에 발탁될 정도로 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어눌하고 지나칠 정도로 겸손했던 오부치 전 총리와 달리 언행에 자신감이 넘쳤다. 정치 감각만 예민했어도 장점이 될 수 있었지만 애초부터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취임 직후인 4월 15일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는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고 끝내 산뜻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이어 6월에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무당파층은 잠이나 자면 된다"는 발언으로 다시 말썽을 빚었다. 10월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제 3국 발견'이라는 대북 국교정상화 교섭의 핵심 외교카드를 노출했다.
오른팔이었던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관방 장관의 여성 스캔들 사임 등 각료의 문책성 사임, 가토 고이치(加藤宏一) 전 간사장의 반란, KSD 스캔들과 외무성 기밀비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는데도 그는 당황하면서도 오히려 당 지도부에 대응을 미룬 채 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다.
지난 2월의 실습선 침몰 사고는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고 보고를 받고도 골프를 계속한 데 대해 그는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무엇이 잘못이냐"고 버텼다. 이 때문에 언론과 국민의 비난을 폭발시켜 지지율 급락을 불렀고 당내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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