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시대를 맞아 동ㆍ식물이나 미생물 등 생물체는 '유전자원(遺傳資源ㆍGenetic Resources)'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이용해 신약, 건강식품, 화장품 등을 개발하면 그 부가가치는 엄청나다.인체가 만드는 성장호르몬을 동물에서 생산해 내면 1g에 2,400만원이나 한다. 항암제 택솔의 성분은 주목(朱木)에서 추출되는데 g당 1,500만원 정도다. 유전자원을 이용한 상품시장은 세계적으로 연 5,000억~8,000억달러로 추산된다. 1997년 세계 정보통신시장이 8,000억달러 규모였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는 4월28일 제네바에서 '유전자원 및 전통지식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연 2회 정례화하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유전자원' 차원에서 생물의 소유권을 보호하려는 최근의 첨예한 국제 논쟁을 다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전자원의 소유권을 인정할지 말지 정립된 입장조차 없는 실정이다. 국내 유전자원에 대한 자료가 체계적이지 않은 데다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총괄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없는 탓이다.
지금까지 선진국은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열대림, 동남아 밀림 등지에서 희귀한 생물을 채집, 신약을 개발하고 로열티를 벌었다.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 열대림에 사는 뱀은 브라질에 아무 수익을 주지 못하지만 이 뱀의 독에서 의약성분을 추출한 선진국의 제약회사는 연 2조원의 판매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최근 2, 3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필리핀은 국가차원의 입법으로는 처음으로 생물 및 유전자원 육성법을 제정해 선진국의 유전자원 접근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단결기구(OAU)는 지난해 유전자원 보호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해 자원보유국과 이용국이 발생 이익을 절반씩 나눌 것을 제안했다. 반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국들은 이러한 주장을 외면해 왔다. 아무리 자원이 있어도 이를 이용하는 기술력이 의미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 유전자원 보호ㆍ관리에 무방비 상태다. 국내 통틀어 320만점으로 추정되는 생물 표본은 미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한 곳에 소장된 표본(7,000만점)의 5%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학의 생물학과 등에 산재돼 있고 이를 총괄하는 기관이나 정보망이 없어 활용조차 어렵다.
환경부는 최초의 생물자원보존관 설립을 추진중이나 올해 예산확보에 실패했다. 환경부, 농림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등 소관부처가 나뉘어 효율적인 정책수립ㆍ집행도 어렵다. 그래서 총괄적인 입법을 통해 유전자원 관리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재래 작물은 최근 10여년간 74%가 사라졌다. 1997년 이후 4대 종묘회사는 노바티스 등 외국 대기업에 인수ㆍ합병됐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미스킴라일락은 미국에서 상용화해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특허청을 중심으로 일단 전문가 그룹 의견을 수렴해 4월 제네바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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