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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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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쑨원

입력
2001.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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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월12일 중국의 정치가 쑨원(孫文)이 베이징에서 죽었다. 향년 59세. "혁명은 아직 이룩되지 않았다"가 그의 유언이었다.수천년 동안 중국 인민을 구속한 전제군주제의 사슬을 끊고 중화민국이라는 공화제 국가를 창건한 그는 국민당이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에는 국부(國父)로 추앙되었고, 만년의 연소(聯蘇)ㆍ용공(容共)ㆍ부조농공(扶助農工)에 기초한 국공합작(國共合作) 덕분에 오늘날의 사회주의 중국 곧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현대 중국의 초석을 놓은 이로 존경 받고 있다.

홍콩의 서의서원(西醫書院: 의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혁명에 뜻을 두었던 쑨원은 마카오와 광저우(廣州)에서 잠시 개업 의사로 일하다가 의업(醫業)을 거두고 중국이라는 국가의 수술에 뛰어들었다.

미국 일본 유럽을 오가며 동지들을 모으는 한편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구상하던 그는 1895년과 1900년에 광저우와 후이저우(惠州)에서 거병을 시도했으나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그가 1905년 도쿄(東京)에서 결성한 중국혁명동맹회는 삼민주의를 기치로 반청(反淸) 봉기를 계속했고, 1911년 신해혁명의 성공 뒤 그는 임시대총통으로 추대돼 1912년 1월1일 중화민국을 발족시켰다.

그는 얼마 뒤 중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북부의 군벌들과 타협해 정권을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넘겨주었지만, 군벌들 뒤에 제국주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반제(反帝)ㆍ반군벌 투쟁을 혁명의 중심에 놓았다.

민족ㆍ민권ㆍ민생을 아우르는 삼민주의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의 혁명 전통을 이어받으며 진화론이나 인민 주권설 같은 19세기 유럽의 과학과 정치사상을 중국의 현실에 맞게 가다듬은 것인데, 쑨원의 만년에는 제국주의 단계의 후진국 혁명이론으로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짙게 띠게 되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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