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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새만금 투자한게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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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새만금 투자한게 아까워?

입력
2001.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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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댐 건설과 시화호 담수화사업이 백지화된 즈음에 새만금이 아직도 병석에 누워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환경단체들의 끈질긴 반대에 힘을 얻었는지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용감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우리 내각이 드디어 철이 들었나 싶어 흐뭇한 눈으로 자식 바라보는 부모처럼 뿌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농림부의 반론과 전라북도의 집착이 만만치 않다.

옛날 개발전능시대에 어느 여가수가 부르던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오갈 수 없는 이별의 슬픔을 그린 노래지만 나는 외인지 그 노래가 간척사업 현장에서 종종 불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바다를 메우는 일이란 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식량자급에 한이 맺혔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었던 사업이다.

갯벌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 저지른 실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 평의 농지에서 얻는 경제적 이득보다 같은 면적의 갯벌이 제공할 수 있는 이득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외국 연구에 따르면 무려 몇 천 배의 차이가 난다.

거기에다 수질개선 비용 등 온갖 환경보전 경비까지 감안하면 손해를 볼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사업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사업을 계속해야 할 유일한 까닭은 단 하나뿐인 것 같다. 이미 쏟아 부은 돈이 너무나 아까워 손을 털 수 없다는 이유 말이다.

얼마 전 강원도 폐광촌에 세워진 카지노에서 요즘 많은 이들이 엄청난 돈을 날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재미로 벌렸던 몇 번의 '도박판'을 빼고는 그 흔한 라스베이가스 여행도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연치 않은 기회에 내 생애 단 한번 해본 도박에서 자본금의 열 배나 되는 돈을 딴 '타고난' 도박꾼이다.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하던 당시 나는 종종 코스타리카 정글로 연구여행을 가야 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스턴 공항을 출발하여 마이애미에서 한번 그리고 파나마시티에서 또 한번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파나마시티 공항에서는 그저 한 시간 남짓 잠시 비행기에서 내려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료함도 달랠 겸 딱 5달러 어치만 동전으로 바꿔 난생 처음 슬로트머신이란 걸 당겨보았다.

조금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일을 반복하다 다시 탑승하라는 장내 방송을 들으며 거의 마지막 동전을 넣고 당기는 순간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상당한 양의 동전들이 쏟아져 내렸다.

자그마치 50 달러를 손아귀에 넣는 순간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한참 후에야 나는 뜻밖의 횡재로 인한 흥분에서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번 돈이 고작 50 달러에 불과했지만 도박의 덫에 빨려드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내가 돈을 딸 수 있었던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나에게 시간이 많았더라면 필연코 5 달러를 다 잃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 분을 이기지 못해 10 달러 짜리 지폐를 꺼내들었을지도 모른다.

'도박꾼의 공리'라는 수학법칙에 따르면 나에 비해 엄청나게 큰 자본을 갖고 있는 카지노를 상대로 하는 게임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우리 둘 중 자본을 탕진할 확률이 높은 쪽은 말할 나위 없이 나이다.

행동생태학 이론에 '콩코드 오류'라는 것이 있다. 콩코드 여객기를 개발하던 프랑스와 영국 정부가 어느 시점에선가 사업을 계속하면 반드시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계산을 손에 쥐고서도 이미 투자한 자본이 아까워 멈추지 못한 사례에서 따온 이론이다.

동물들이 과연 콩코드 오류를 범하는가 하는 것이 논란의 초점이었다.

하이에나에게 공격 당하는 새끼를 구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던 어미 영양도 일단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

자식을 잃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목숨을 유지하여 나중에 태어날 자식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이미 거의 죽은 자식에 매달리는 것보다 이롭기 때문에 진화한 행동전략이다.

물론 영양이 그 순간에 두 전략을 비교하여 손익계산을 한 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낀 어미가 무모한 어미보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겼기 때문에 이 약간은 비정한 듯 보이는 행동이 진화한 것이다.

자연계에서 콩코드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은 동물은 우리뿐인 것 같다. 다른 자식들을 생각하면 냉정해야 할 상황에서 우린 한 자식을 위해 너무도 쉽게 목숨을 던진다.

한 개인의 수준에서는 물론 집단의 수준에서도 종종 범하는 일이다. 콩코드 개발사업이 그랬고 새만금사업이 그 지경에 놓였다.

16년 동안 무려 1조원의 예산을 날리고 결국 해수호로 전락한 시화호의 경우를 보면 아까운 생각이 들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방조제가 전부 이어지는 마당에 멈추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미국 가수의 노랫말에도 있듯이 훌륭한 도박꾼은 손을 털고 일어설 때를 알아야 한다. 잃은 돈이 아깝다고 계속 덤벼들면 반드시 더 큰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기업이 맡아서 하는 일이라면 벌써 옛날에 그만 두었을 것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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