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한미 정상회담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파격적인 언사, 공동발표문 작성까지의 우여곡절,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과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를 둘러싼 신경전에 이르기까지 무성한 뒷 얘기를 남겼다.■빗나간 예상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당혹하게 한 것은 조지 대통령의 대북 인식. 사전에 미국을 다녀온 이정빈(李廷彬) 외교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이 전했던 부시 행정부의 기류는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외교팀은 정상회담 후 자체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백악관과 국무성의 차이로 진단했다.
국무부는 오랫동안 대북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의사를 확고히 갖고 있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부임 후 이들의 보고를 토대로 대북화해협력정책의 유효성에 동의했다.
우리 외교팀도 국무부와 주로 접촉을 했기 때문에 낙관적 판단을 했다. 그러나 실제는 정 반대였다. 국무부는 정상회담에서 '곁다리'였다.
파월 장관이 스웨덴 안나 린드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 중 계승할 것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다음 날 이를 번복, 대북 강경발언을 하게 된 것도 백악관의 기류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외교관계자들도 "국무부의 분위기를 지나치게 중시, '한미간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회담의 기대치를 너무 높인 것은 실수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공동발표문 배포시점
외교팀이 아쉬워하는 것은 공동발표문이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배포되지 않고 오찬 회담 후 배포된 대목.
회견이 현지시간으론 7일 낮 12시였지만 한국시간으로는 8일 새벽 2시였기 때문에 한국 언론들은 공동 발표문을 보지 못한 채 부시 대통령의 '회의적'이라는 말을 '서울 시내판용'으로 보도할 수 밖에 없었다.
AP통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도 부시 대통령의 강한 어조를 1보로 내 보내며 '이견'을 부각시켰고 이것이 회담의 전체 평가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외교 관계자들은 "공동발표문이 먼저 배포됐으면 부시 대통령의 '회의적'이라는 말이 갖는 충격의 농도가 약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NMD와 ABM의 신경전
NMD는 잘 다루었으면 우리에게 유리한 외교적 카드였다. 그럼에도 미측이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한러 정상회담의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먼저 입장을 밝혀야 했던 것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NMD 관련 문구는 예민한 딜(deal)의 대상이었다. 미국측은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방어와 억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agree)"는 문구를 요구했으나 우리 외교팀은 동의 대신 '의견을 같이 했다(share)'라는 표현을 고수, 결국 우리측 의견이 발표문에 반영됐다.
한 고위 외교당국자는 "한러 정상회담 때 미 언론이 미묘하게 반응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우리 언론이 덩달아 나선 것은 국익에 큰 손실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부시는 '카우보이 스타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보여준 언행은 김대중 대통령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했다. 일반인의 대화에서도 남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이 금기인데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말을 자주 했다.
외교관계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를 연관지어 '카우보이 스타일' '텍사스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은 좋게 말하면 사나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외교적 의전에 익숙지 않고 전략적이라는 느낌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 대한 태도는 적의에 가까웠다.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신사고, 상하이 방문, 경제난과 개방의 필연적 연관성을 진지하게 설명하며 북미관계 개선을 촉구하자 부시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또 "자꾸 북한을 달래다 보니 버릇이 나빠졌다"는 언급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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