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생각] 카프카의 가장 아름다운 편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생각] 카프카의 가장 아름다운 편지

입력
2001.03.10 00:00
0 0

프란츠 카프카는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카프카 자신만의 문체에 담아낸 작가이다.문학에 명을 걸었던 그의 삶 역시 그의 문학처럼 어두운 고독과 불안, 망설임 그 자체였지만, 그에게도 임종 직전 잠깐 비친 햇살 같은 '행복한' 몇 달이 있었다.

다음해 결핵요양원으로 실려가, 41회 생일을 한달 앞두고 임종하기까지 1923년 겨울을 베를린의 슈테글리츠 지역에서 도라 디아만트라는 지순한 젊은 여성의 보살핌 가운데서 보냈다.

카프카는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읽지 말고 남김 없이" 불태우라는 부탁을 했고,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에서 천문학적인 인플레가 벌어졌던 겨울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결핵을 앓아야 했고, 불을 켜고 글을 쓸 석유램프도 아쉬웠던 참으로 가난한 행복 - 그것이 카프카가 누린 짧은 행복이었다.

유대인이었던 탓에 기구한 인생을 살다 1952년에 죽은 도라의 생애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알려져 독일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있다.

그 시절 카프카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 하나가 몹시 슬피 우는 것을 보았다. 인형을 잃은 것이었다.

그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지켜보던 카프카가 다가가서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라 쳐다보는 소녀에게 카프카가 덧붙였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러던 걸." "잘 있대요? 편지는 어디 있죠?" "편지를 마침 집에 두고 왔구나. 네가 내일 다시 여기로 오면 내가 가져다주마."

그날밤 카프카는 인형의 편지를 썼다. 다음날 같은 자리로 가서 아직 글을 못 읽는 소녀에게 그 편지를 읽어주었다.

3주일이 넘게 이 만남은 계속되었다. 인형이 사랑에 빠지고,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신혼살림을 꾸리고, 마침내 소녀에게 다시 만나기는 어려운 데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편지는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목숨이 소진해 가는 세기의 작가가 한 어린 소녀를 위하여 썼다는 30여 통의 인형편지들.

78년 전에 '쓰였다는' 그 편지를 찾겠다고 지금 한 미국 카프카 연구가가 연구비를 받아 베를린을 헤매고 있다.

어수선한 한 세기를 넘으며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기도 했던 대도시 베를린 어느 귀퉁이에, 그 옛날의 어린 소녀가 여태 살아 남아 그 조그만 쪽지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제 나타난 연구가에게 내주겠는가.

아름답지만 하도 허황해서 가볍게 읽었던 그 기사가 이상하게도 시간이 가면서 자주 떠오른다.

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이 정제된 카프카의 문학작품의 뒤에는 작품 못지 않은 밀도를 지닌 꾸준히 쓴 일기와 많은 편지들이 있다.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과 진가가 있다. 하지만 가끔, 찾아 질 리 없는 그 '인형편지'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쪽지를 찾고 못 찾고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느껴진다. 이 세상 한 구석에 그런 '한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세상은 이런 소위 '미친 짓'으로 잠시 빛나는 게 아닐까.

인간의 고통에 눈 밝기에 '거짓말'인 그런 글을 쓰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또 그런 글과 그런 인간이 소중한 줄 알기에 몇 장의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이 삭막한 세상에 빛을 밝힌다.

허구로써 현실을 감내해 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의 진면목일 것이다.

물론 문학시장이라는 난장(亂場) 너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찾아질 리 없는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이득 없는 일에 돈까지 대는 한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여유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전영애 서울대 독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