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긴장완화 구상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 변화의 흐름은 후퇴가 아닌 우회로 요약된다.김 대통령은 9일 워싱턴에서 가진 미국기업연구소(AEI)와 미국외교협회(CFR) 공동주최 간담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시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논의할 생각이고, 긴장완화 문제는 평화선언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가침 합의가 포함된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방미 전 "평화협정 또는 평화선언 등 어느 것이 될지 모르지만 군사적 문제를 포함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그래서 9일 발언은 한반도 긴장완화 추구를 '평화선언'형식으로 하지 않겠고, 그 내용도 이미 기본합의서 내용으로 한정하겠다는 것으로 구상의 '후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김 대통령의 이 발언에는 급속한 한반도 긴장완화추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미국측 우려가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부시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미사일 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에서도 북한 군사력은 위협적이며, 전력변화 모색과장에서 '검증'이라는 걸림돌이 내재돼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군사적 긴장완화방안 논의시 주한미군 문제가 전면에 떠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 북한도 공식적으로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주한미군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언급한 기본합의서의 내용과 기본합의서에 대한 김 대통령의 평가 등을 상기해본다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잇다. 김 대통령은 기본합의서를 평화의 장전이라고 평가해왔으며, 1995년 성안된 3단계 통일방안도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국가 연합방안도 내용적으로는 기본합의서를 이행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만 김 대통령은 북한이 기본합의서 거론 자체를 꺼리는 점을 감안, 대통령 취임후 자주 거론하지 않았다.
기본합의서 내용을 살펴보면 기본합의서 범위내에서도 폭넓은 긴장완화 추구가 가능하다. 이 합의서 제2장 남북 불가침에는 무력사용 포기와 군사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평화선언과 함께 사실상 모든 군신뢰구축방안과 단계적 군축방안등이 망라돼 있다.
즉 남북 정상이 기본합의서 내용의 실천에 합의할 경우 한반도 평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답방을 통해 구체적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합의형식은 부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6·15 공동선언'과 같이 교류·협력을 담는 포괄적인 문서를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을 담아야한다는 얘기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남북 기본합의서
김대중 대통령이 군사적 완화 방안을 추구하기 위해 참고할 19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ㆍ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기본합의서)에는 방대한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들이 거론돼 있다.
김 대통령이 언급한 기본합의서는 기본합의서 '제2장 남북 불가침'과 이 장(章)을 세부적으로 구체화한 '제2장 불가침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부속합의서)를 말한다. 6개 조항으로 구성된 제2장 남북불가침에는 무력사용포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정전협정에 규정된 불가침 경계선 준수 등이 명시돼 있다.
합의서는 또 남북이 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부대이동 및 군사연습의 통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인사 교류 및 정보교환,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무기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 및 검증 문제 등을 협의ㆍ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우발적 무력충돌방지를 위한 직통전화 설치도 포함돼 있다. 6개장 19개조로 구성된 부속합의서는 이러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규정들이다. 일례로 부속합의서 1장 '무력불사용' 에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의 무력을 증강하지 않는 문제까지 명시하고 있다.
한편 평화선언과 평화협정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전적으로 본다면 평화선언은 1953년의 정전협정의 변경없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해소하는 방안이며,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협정으로 볼수 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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