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이래 1년 반 만에 엔화가 달러당 120엔의 심리적 장벽을 두드리고 있는 현재의 엔저가 일본 당국에 의해 유도되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강한 엔'이 지론인 하야미 마사루(速水優) 일본은행 총재는 7일 "디플레이션 압력의 완화를 위해서는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엔저를 유도하는 정책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이어 8일에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재무성장관이 "자연스러운 엔저라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이어 "재정이 파국에 가까운 상태"라고 밝혀 엔화 매도를 더욱 자극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발언의 진의가 오해됐다고 해명했지만 엔저 유도가 하나의 대증요법이 될 수 있다는 오랜 관측을 일단 확인한 외환시장의 흐름은 돌이키기 어려워졌다.
미국 경기의 후퇴가 일본의 수출감소를 통해 생산ㆍ설비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올들어 이미 뚜렷해졌다. 1월 일본의 무역수지는 1997년 1월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2월에도 흑자폭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줄었다. 경기후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수출이라도 늘리려는 정책의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대의 엔고 요인이었던 무역흑자가 꾸준히 줄고 있는 등 엔저의 구조적 요인도 뚜렷해지고 있다. 총여신액의 12%에 달하는 금융기관의 불량채권 처리로 기업도산과 실업이 늘어나면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금융완화 정책이 불가피하다. 엔화의 공급량이 늘어나는 한편 이미 장기 금리가 연 1.1%수준으로 떨어져 있어 금리면에서의 엔저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엔저는 수입물가의 상승을 불러 서민생활을 압박, 소비심리를 떨어뜨린다. 또 1998년 금융불안 당시 엔저가 주가의 동반 하락을 유발했던 경험도 있어 엔저는 양날의 칼일 뿐 묘약은 아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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