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대표 오삼숙,그녀의 길을 간다"재결합은 오삼숙과 많은 아줌마들에 대한 배신행위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남편과 다시 합쳐야 한다."
MBC 월화 드라마 '아줌마'가 종영(24일)이 다가오면서 인터넷 사이트나 각종 모임의 화제는 단연 이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나야 하는가'이다.
"재결합은 없다."
작가 정성주씨의 방향은 단호하다. "남들만큼 배우지 못하고 남성에 비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은 오삼숙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말을 낸다" 는 작가의 말이 뜨겁게 달궈진 '아줌마' 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아줌마' 는 오삼숙(원미경)이 식당을 경영하며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나가고 이혼녀라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두 아들을 밝게 키우며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드라마가 따랐던 이혼 뒤 행복한 재결합이라는 전형적인 구도가 깨지는 순간이다.
■2001년 한국에서의 '아줌마'
'아줌마' 는 한 여성의 홀로서기만 그린 것이 아니다. 한국 가정과 사회, 기득권층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묘파했다. 대학교수 사회의 허위의식까지 송두리째 드러냈다.
결혼 전에는 잘난 오빠 때문에 대학도 못가는 찬밥신세로, 결혼 후에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남편과 잘난 시집식구들로 인해 가정부로 전락한 오삼숙은 많은 우리 아줌마들의 초상이다.
오삼숙에게 무한한 희생만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시댁 식구는 허울뿐인 권위의 상징이다. 또한 대학교수인 남편 장진구(강석우), 오빠 오일권(김병세)은 사회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남성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386세대로서 보일 수 있는 허위의식과 이중성의 집합체다.
못배우고 대우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약자인 아줌마 오삼숙 대(對) 시댁ㆍ남성의 대결이 긴장감 있게 전개되면서, 가족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때로는 희화적으로, 때로는 통렬히 드러났다.
드라마가 다른 면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종래의 드라마와는 구별되는 여성상과 가족문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김훈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억압구조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가는 오삼숙은 요즘 여성들이 지향하는 여성상이다.
그리고 다른 드라마와 달리 오삼숙과 이혼의 빌미가 된 장진구 애인(심혜진)이 유대를 맺는 것, 친정 어머니가 딸의 홀로서기를 돕는 것은 상당 부분 페미니즘적 요소를 도입한 진보적인 내용들이다" 고 분석했다.
■오삼숙과 현실 속의 아줌마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 3의 성'으로 불리는 아줌마. 아줌마 하면 떠오른 것은 염치도 없고 이기적일 뿐인 이미지다.
"아줌마 하면 지나가는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줌마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의 아줌마와 드라마 '아줌마'는 얼마나 접근해 있는 것일까.
오삼숙 역의 원미경은 "억압적인 시댁 식구들에 순응하며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지상과제로 삼는 오삼숙의 모습 등은 현재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아줌마다.
하지만 아직은 남편의 문제를 이혼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가는 여성은 소수일 것이다"라는 견해를 보인다.
여전히 현실에서는 많은 아줌마들이 못배웠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견뎌내고 있다.
드라마 '아줌마'사이트를 하루 평균 7만~20만명이 조회하고 500여명이 시청 소감을 띄우는 것은 오삼숙을 보며 그렇지 못한 현실의 아줌마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교수가 되고 바람을 피운 남편에 대해 단호히 이혼하고 새 출발해 자신의 길을 가라는 시청자들의 거센 요구 역시 당당하고자 하는 아줌마들의 속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줌마'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아줌마'는 20~30% 라는 시청률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아줌마'는 이혼을 조장하고 왜곡된 남성상을 확대재생산 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여성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내용이 담긴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최근 만난 홍콩의 아시아위크지 기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인식, 가족형태가 변화하는 단초를 '아줌마'에서 발견했다"면서 '아줌마'신드롬을 다룬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진구는 정말 나쁜 놈인데, 사실 주위에 이런 사람이 많다. 장진구 역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다.
그를 보면서 우리의 남성과 배운 자들이 약간은 반성을 했을 겁니다."우리 사회의 아저씨들이 권위와 허위의식으로 자신을 숨기고,무능하면서도 아내에게 제왕처럼 군림하는 제2의 장진구로 전락하지 말기를 당부하는 강석우의 말이다.
■자가 정성주씨
드라마 '아줌마' 열기의 진원지인 작가 정성주(45)씨는 마직막 극본을 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6개월 동안 '아줌마' 에 얽매여 정말 힘들었다는 정씨는 높은 인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밝았다. " 극중 오삼숙은 아줌마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자도 아니고 남성에 비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은 우리 사회 소수(minority)의 대변자이다. 소수에 속한 한 여성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당초 기획했던 대로 장진구와 오삼숙의 이혼 뒤 재결합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데 대해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한 비전 제시로 봐달라" 고 주문했다.
언론, 인터넷,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인기를 실감했다는 정씨는 "잘못된 억압구조에 순응하는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오삼숙에 공감했던 것이 인기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아줌마' 에서 장진구를 비롯한 남자 캐릭터들이 한결같이 왜곡된 남성상을 심어주고 극 내용이 이혼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인물을 창조하려고 주위의 사람들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작가적인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장진구 같은 인물이 너무나 많다. 불행한 결혼생활보다는 행복한 이혼생활이 삶에 있어서 바람직 하다" 고 반박했다.
드라마가 끝나는 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정씨는 " '아줌마' 가 여성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작가로서 큰 보람이겠다" 며 웃었다.
(위) 원미경이 열연한 '아줌마'의 오삼숙은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새로운 여인상으로 떠올랐다. (아래) '새로운 여성상과 가정상을 심어주려 했다. 는 작가 정성주 씨.
'장진구 같은 놈' 최악의 욕으로
오삼숙과 장진구의 이혼당시 '찬성'이 압도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재결합을 반대하고 있다.
"인간 말종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작진이여, 제발 오삼숙- 장진구가 '전(前) 부부'로 남게 해달라"(김지윤) "제목이 '아줌마'라면 삼숙이 재기하고 발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박순희) "한국 아줌마를 우롱하는 장진구 같은 추잡한 인간이 재결합에 성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선정아)
차근차근한 설득에서부터 '재결합하면 다시는 MBC드라마 안 본다'는 협박까지, 재결합을 찬성하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을 보아 다시 가정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한두 사람의 의견은 "말도 안 된다"는 면박을 받기 일쑤다. '가정의 평화' '아이들 교육'등을 드러내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네티즌의 분위기는 압도적이다.
자기 삶에 대해 좀더 주체적이고, 당당해진 여성들의 인식변화도 큰 원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점점 더 심해지는 장진구의 '증세'가 시청자들의 분노를 크게 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사회학적 분석'을 남발하는 위선적 지식인의 전형 장진구는 이제 이혼으로 처지가 궁색해지자 "재결합의 타당성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겠다"며 비굴한 손을 내밀고 있다.
'아줌마'가 방영되면서 '장진구 같은 놈'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이 되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내가 남편더러 '장진구 같은.'혹은 '장진구 보다 못한.'운운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웃지 못할 풍경도 생겼다.
그 인상적인 캐릭터 때문에 처음부터 제목을 '아줌마'가 아닌 '아저씨'로 붙였어야 한다는, 솔깃한 분석도 생겨나고 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양은경 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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