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3월9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특별 의회를 소집했다. 그 해 6월16일까지 100일 동안 열려 '백일의회'라고 불리게 될 이 특별 회기 동안 의회는 정부가 내놓은 적극적 불황 대책들을 입법화했다.이로써 그 전해 대통령 선거에서 루즈벨트가 공약으로 내건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신정책)'이 시동을 걸었다. '잊혀진 사람들'이란 1929년 10월24일 뉴욕 증시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속에서 빈궁과 불안에 떨던 사람들을 뜻한다.
취임 직후 대공황을 맞은 전 대통령 후버는 재임 기간동안 국민총생산이 거의 반으로 줄고 실업자가 1,300만명에 이르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뉴딜 법안 작성은 루즈벨트 주변의 진보적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로 이뤄진 브레인 트러스트가 맡았다.
뉴딜의 중요 내용은 금본위제의 폐지와 관리통화제의 도입을 통한 정부의 통화 규제력 강화, 농업조정법에 의한 농산물 생산 제한과 농민에 대한 자금 지원, 전국 산업 부흥법을 통한 공정경쟁규약 작성과 노동자의 고용ㆍ임금 안정화, 테네시강 유역개발공사(TVA)의 설립을 통한 종합적 지역개발, 자원보존 봉사단과 연방 임시 구제국의 설립을 통한 실업자와 궁핍자 구제 등이다.
초창기에 전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뉴딜 정책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대자본가들로부터 '사회주의적'이라는 딱지를 받았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전국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을 통해 노동자ㆍ농민ㆍ도시 서민의 편에 더욱 다가갔고, 36년에 재선되자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진보의 기준이다"라는 말로 뉴딜의 방향을 분명히했다.
뉴딜 정책은 미국의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를 케인즈 경제학으로 대체함으로써 수정자본주의의 등장을 알렸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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