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뒤바꿨다. 그들은 적극적이었다.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은 "한국과의 합작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했다. 전세가 역전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지난달 28일 도쿄 한국중앙회관 문화원에서 있었던 '한ㆍ일 영화공동제작 세미나' 에 참가한 80여명의 일본 영화프로듀서들은 "한국과 합작으로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려면 누구와 접촉하면 되느냐" "합작에 제도적 법적 걸림돌은 없느냐" "한ㆍ일 양국의 정서 차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기획단계부터 서로 공동작업을 해야 한다" 등의 질문과 제안을 했다.
4년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구애하듯 합작을 강조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번 세미나를 일본영화TV프로듀서협회가 적극적으로 마련했다는 사실 역시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풍부해진 한국의 영화자본을 부러워했다. '쉬리' 의 일본흥행과 '공동경비구역 JSA' 의 위력에 놀라워 했다.
여전히 제작비와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그렇다고 정부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닌 일본영화로서는 어쩌면 한국과의 합작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은지 모른다.
그들 앞에서 김혜준 실장은 영화진흥금고, 극영화제작지원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아직 신청이 없어 그렇지 한ㆍ일 합작 영화라고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유인택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양국 프로듀서들의 투자 및 시나리오 뱅크 조성, 감독 및 배우 발굴 및 선정, 작품 개발 등을 제안했다.
장삿속만 차리는 메이저 배급사가 아닌, 좋은 영화 제작에 관심이 더 많은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프로듀서들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들이었다. 이미 '순애보'(감독 이재용)를 통해 한국과의 합작 가능성도 타진했다.
이 영화의 일본측 프로듀서였던 쇼지쿠(松竹) 영화사의 츠시다씨는 "한국에서 '순애보'가 흥행에 실패했고, 일본에서는 아직 개봉하지 않았지만 설령 일본에서조차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이었다. 처음 양국 공동의 시장을 갖게 된 것인 만큼 충분히 의욕을 갖고 해볼만하다"고 말했다.
합작이 일방적으로 일본영화에 도움만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70억원짜리 영화까지 만들려는 한국영화 현실에서 국내시장만으로는 경제성이 없어졌다.
돈은 넘치는데 알맹이 있는 기획이나 소재, 시나리오도 없다. 볼거리 몇 장면과 웃고 마시는 일상성의 묘사도 최근 한국영화들의 잇따른 흥행실패로 이제는 '꿈' 이 됐다. 한국영화도 속은 곪아가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일본과의 합작은 유럽공동체가 그렇듯 다양한 제작 방식과 소재, 완성도 높은 영화, 넓은 시장의 확보를 위한 한국영화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 선택이 한국영화의 힘과 미래가 되려면 돈자랑만 하지말고 우리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안동규 한ㆍ중ㆍ일 영화교류추진위원장의 바람처럼 우리 배우들도 국내 개봉만 하면 '나 몰라라' 뒷짐지지 말고 외국 배우들처럼 해외 홍보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한국영화, 나아가 배우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합작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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