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택화재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젊은 그들의 용기나 희생정신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묵묵히 사명을 다하고 있던 최후의 순간까지도 우리는 그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현대국가 어느 곳에서나 소방은 시민의 위난과 고충의 해결사로 자리잡고 있다. 지리정보에 밝고 기동에 신속하다는 소방조직의 기술적 능력은 화재폭발에서 지진, 수상사고, 그리고 구급업무까지 생명이 걸린 시민안전수요에 대한 총체적 해답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 각 국에서 소방은 위험에 대한 노출정도가 가장 높은 직종으로 분류되며 유사시 응분의 보훈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소방관에게 화상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시민의 공감대가 일기 시작한 것도 최근 극장가에서 소방관 이야기가 흥행이 되면서부터이다.
행정자치부 소방국 통계에 의하면 1996년이후 지난해까지 소방공무원의 사상자수는 1,113명이고 이중 75명이 순직했다.
순직자는 유족보상금과 사망조위금이 지급되는데 그 액수는 급여의 40배 정도이다. 2년전 화재붕괴사고에서 근무경력 11년의 소방공무원 순직자에게 4,500만원이 지급되었다.
이는 통상의 교통사고 사망자의 3분의 1 정도이며 삼풍사고 등 재난피해자의 5분의 1 이하에 머무는 수준이다.
부상자의 경우 상처치료혜택은 생리적 기능의 개선으로 끝이 난다. 불에 덴 상처가 아물고 나서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성형외과적 치료는 보상은커녕 보험의 대상도 못 된다.
또 안보 최우선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의 보훈 보상규정은그 수준과 절차에 있어서 소방의 희생에 대하여 군·경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화재진압중 사망한 소방공무원이 보훈대상자로 지정받으려면 군ㆍ경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쳐야 하며, 교육ㆍ훈련중 부상 또는 사망하는 것이 보훈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소방공무원 열악한 근무여건이다. 주당 최소 84시간이라는 이들의 근무현실은 타 직종에서는 예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구급을 비롯한 사회적 수요 폭증에 따른 업무부담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하루출동건수가 10∼19회에 달하는 상황에서 우리 소방의 인력수준은 선진국의 20%에 불과하다. 또 우리 소방공무원들이 입는 현장진압복(방수복)은 한 벌당 가격이 8만원 안팎인데 국제기준에 맞는, 소방방수복은 120만원 정도 한다. 그 성능이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할만하다.
그런데 지난 연말 서울의 한 민사재판에서는 진화작업을 마치고 현장을 경찰에 이관한 후 3시간이 지난 뒤 재발화한 화재에 대하여 '잔불처리 미흡'의 책임을 물어 출동소방관에게 1억 6,000만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소방관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건물이 다 타도록 내버려두었다면 배상 책임을 면했을 것을 위험천만한 좁은 페인트공장 내부에 진입하여 화재확산을 막은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이러한 판결은 소방공무원의 사기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2년 전 미국의 우스터시에서 일어난 창고화재로 6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것도 걸인 1명이 내부에 있다는 시민의 제보 때문이었다. 당시 클린턴대통령의 추모사와 4km에 달하는 시민의 추모 행렬은 미국 사회의 영웅대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젊은 동료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훔치는 소방공무원과 그 유족들에게 결코 상실감이나 배신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이들의 죽음은 아름다운 비극이 되어야 한다.
소방공무원이 더 이상 똑 같은 역경 속에서 근무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지진방재 연구소장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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