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했는데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은 옛날 그대로다. TV로 중계되는 기념식 광경을 보면 마치 60ㆍ70년대의 '대한뉴스'를 보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심지어 참석한 사람들의 '감흥 없는 태도'까지 예전과 똑 같다.■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ㆍ1절 기념행사도 마찬가지였다. 3ㆍ1절의 감흥은 애국가 제창에서부터 빗나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애국가를 부를 때면 이유없이 엉거주춤 해진다. 입도 조금씩 벌려 소리도 입안에서만 내는 경향이 있다.
노래방에서는 하나같이 똑 부러지게 가수처럼 노래를 잘 하면서도 그렇다. 그날도 그랬다. 높은 분들이 자리한 단상이나, 단하 모두가 비슷했다. 대통령 부인 이휘호 여사가 비교적 또렷하게 애국가를 불렀다.
■사실 애국가 부르기를 실사구시화하는 방안을 검토 해 볼 필요는 있다. 애국가 곡조는 원래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교향곡 '코리아 판타지'의 주제다. 곡조 자체가 느리고 장중하다.
가뜩이나 이런 곡조를 4절까지 따라 부르자니, 분위기가 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4절까지 가사를 외우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니 여럿이 함께 부르는 데 따른 수줍음까지 겹쳐 엉거주춤해지게 마련인 것이다.
애국가를 "동해물과 백두산이."1절만 하되, 반드시 입을 크게 벌려 분명하게 부르도록 하는 가칭 '애국가 제창 규범'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기념식 규모나 참석인원 규모도 새로운 각도로 연구 해보는 것이 좋겠다. 이번 3ㆍ1절 기념식 때 보니까, 세종문화 회관 1ㆍ2ㆍ3 층을 꽉 메웠다.
그런데 TV 중계 카메라에 비친 참석자들의 모습은 마치 학업에 뜻이 없는 학동들 같았다. 졸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아예 입을 헤 벌리고 잠을 잤다. 기념식장에 끌려 온 탓이다. 행사 규모를 줄여 참석 인원을 적게 한다면 그런 일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거추장스러운 단상ㆍ단하의 구분도 사라진다. 거창한 기념식만이 뜻 높고 빛나는 것은 아니다.
구태의연은 먼 데 있지 않다.
/이종구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