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6일부터 미국을 방문하는 김대중 대통령에 의미있는 예우를 해주고 있다.우선 부시 행정부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을 정상회담의 파트너로 택했다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캐나다 멕시코 영국 콜롬비아에 이어 5번째. 캐나다 멕시코 콜롬비아는 인접국, 영국은 '형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맹국 중에서는 한국이 첫 회담 파트너인 셈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김 대통령의 사형면제를 조건으로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과 가장 먼저 회담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새 정부가 일본에 앞서 한국과 먼저 정상회담을 한 적은 없다. 이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의 퇴진 가능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만, 일본 외교가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의 방미가 국빈 방문(state visit)이 아닌 실무 방문(working visit)으로 의전상 회담만 하고 끝나는 것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회담 후 김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는 점도 예우의 한 단면. 실무 방문의 경우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2박을 하는 게 관행이지만 김 대통령은 3박을 한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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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상회담 의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역대 35번째 한미 정상간 회담이다.
전시중인 1952년 12월2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가 방한한 것이 한미 정상회담의 출발이었다. 아이젠하워 당선자의 방한 목적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의 회담보다 전황 파악에 있었다. 전쟁을 계속할 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통령 취임식도 갖기 전 극비리에 한국을 찾은 것이다.
미국과 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했던 대통령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각각 7차례였다. 박 대통령은 5ㆍ16 쿠데타 후인 61년 11월14일 국가재건회의 의장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 5ㆍ16의 승인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지원을 '선물'로 받았다. 박 대통령은 이후 존슨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나 지미 카터 대통령과는 주한미군 철수와 인권 문제로 소원한 관계를 유지했다.
12ㆍ12 및 5ㆍ18로 집권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에게 한미 정상회담은 취약한 정통성을 보장 받는 지름길이었다. 전 대통령은 81년 1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직후 미국을 찾는 등 레이건 대통령과 3차례 회담했다.
노 태통령의 파트너는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대통령. 노 대통령은 88년 10월 방미한 이래 부시 대통령과 6차례나 회담했다. 안보 조율과 함께 경제ㆍ통상 문제가 주의제로 오른 것도 이 무렵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93년 7월11일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우리나라를 택해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한 목소리를 냈으나 이후 김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냉랭한 관계로 돌아섰다. 틀린턴 대통령은 그러나 98년 6월9일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는 대북 포용정책의 보조를 맞추며 한미 공조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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