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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광복듣고 빛나던 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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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광복듣고 빛나던 그 얼굴...

입력
2001.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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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이름이 남을만한 독립운동가는 아니라해도 나는 아버지가 분명 우국지사였다고 믿는다.아버지는 완고한 분이셨다. 맞춤법과 구구단을 익혀야할 소학교 학생인 나에게 아버지는 "그까짓 학교는 다녀서 뭘 하느냐"며 한자나 익혀 두라고 하셨다.

서울서 전문학교에 진학하려던 언니도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고향인 전북 신태인으로 끌려 내려왔다.

어린 마음에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항상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고, 늘 울분을 삼키는 듯 한 아버지가 매우 불행한 분이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나를 소학교에 가지 못하게 하셨던 것은 '일제하에서 배운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회의와 좌절감 때문이었다.

언니도 아버지가 그토록 상경을 막았던 것이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런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얀 분필로 굵게 그은 듯 두 줄기의 연기를 뿜으며 거대한 비행기가 창공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B-29 폭격기였다.

두려움에 떨던 우리에게 아버지는 담담하면서도 비장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이제 다 되었다. 곧 끝날 것이다."

아버지는 며칠간의 양식을 꾸려 가족들을 데리고 별장으로 쓰던 절로 피난을 갔다. 절에서 사나흘 정도 지낸 어느날, 읍내 집에 다니러 가셨던 어머니가 점심 무렵 소리치며 뛰어올라오셨다. "전쟁이 끝났어요. 일본 천황이 항복을 했대요. 정오에 내가 직접 들었어요."

어머니로부터 광복의 소식을 접하던 때의 아버지 얼굴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분출하지 못한 분노와 회환 속에 항상 어딘가가 아프기만 한 것 같던 아버지의 표정은 희망 기쁨 환희 아니 그런 정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생기로 빛나고 있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소리가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가족은 황급히 산을 내려왔고 모든 읍내 사람들이 원로 격인 아버지를 둘러싸고 만세를 불러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나가기조차 꺼렸던 주재소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주재소 깃대 꼭대기에는 일장기 대신 이제껏 본 적이 없던 깃발(태극기)이 작열하는 햇빛 속에서 나부꼈다.

당시 아버지보다도 더 나이가 든 지금, 그때의 아버지를 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은방희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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