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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

입력
2001.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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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를 폐지하는 것은 2020년 올림픽에서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아들에게 금메달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상속세가 사라지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식의 귀족사회가 되면 안 된다."

미국의 상속세 폐지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대표적인 갑부들이다.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부자들이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 공연히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가 않다.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미국의 갑부 120명이 대대적인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상속세를 없애겠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대한 당사자들의 '집단 행동'인 것이다.

갑부들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 퀀덤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 석유왕 록펠러의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 등 그야말로 세계적인 부호들이 포함되어 있다.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이들은 왜 반대하는 것일까. 이들이 훌륭한 인도주의자거나 자비심이 넘쳐서 그럴까.

아니다. 이들은 그 동안의 경험이나 지식 등으로 보아 상속세를 폐지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속세 유지야말로 상속보다 능력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사회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워런 버핏의 말이다.

과도한 상속세가 저축과 투자의욕을 줄이는 역기능을 가져올 것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공정한 경쟁사회, 기회 균등의 사회가 부자를 탄생시켜 결국 사회전체의 부를 증가시킨다는 믿음이다. 출발선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어 결과가 뻔한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할 것인가.

또 상속세 폐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를 가져오고, 이는 부자들에게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빌 게이츠 회장의 부친인 윌리엄 게이츠는 "상속세를 폐지하면 억만장자 자식만 살찌게 하고 힘겹게 살아가려는 가정에 상처를 입히며, 사회복지나 의료보험을 축소하고 환경개선을 소홀히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빈곤층의 증가는 부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들은 빈곤층의 적대감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대비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들끼리만 살아가야 한다.

수요자가 없어 자신들의 사업은 더 이상 번창하기 힘들다. 부의 양극화 사회는 부자들에게는 위험하고 재미없는 세상인 것이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중요시 된 것이 부자들에 대한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상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지 부모가 부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대를 이어 잘 사는 것은 정의 사회가 아니다.

권력의 세습이 비민주적이듯 부도 마찬가지다. 부가 성공의 진정한 척도가 돼 부자가 존경을 받으려면 사회에서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돈 앞에서는 비록 굴복하지만 돌아서면 부자들을 비난하고 경멸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부자들의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은 자신들이 부를 창출할 수 있었던 미국식 경제 사회제도의 기본을 계속 유지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를 언제까지나 지켜나가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재벌을 비롯한 부자들이 쌓아올린 부에 대한 정당성조차 의심 받는 상황에서 각종 변칙적인 사전 상속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의 경우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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