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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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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스탈린

입력
200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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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5일 옛 소련의 정치가 요지프 스탈린이 모스크바에서 74세로 죽었다. 그루지아의 고리에서 신기료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스탈린은 신학교 재학 중에 반정부 서클에 가담해 퇴학 당한 뒤 감옥을 드나들며 직업적 혁명가가 되었다.1920년대 중반 이래 스탈린이 크레믈린의 주인이었던 30년간은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에서 가장 영웅적인 시대이자 가장 끔찍한 시대였다.

그는 스탈린이라는 필명이 뜻하는 대로 강철의 사나이였고, 강철의 사나이답게 철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 기간에 소련 국내에서는 사회주의적 공업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포함해서 나라 전체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이뤄졌고, 소련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국방위전쟁이라고 불렀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가운데 가장 커다란 인적ㆍ물적 손실을 감당하면서도 결국 나치스를 굴복시켰다.

그러나 그 시기는 또 20세기의 어둠을 상징하기도 했다. 세칭 모스크바 재판을 통한 정적(政敵)의 무자비한 숙청, 스탈린 중심의 당사(黨史) 조작으로 시작된 봉건적 개인 숭배, 당의 관료화와 함께 진행된 민주주의의 몰락 같은 것들이 그 어둠의 일부다.

1930년대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어둠의 세상을 비추는 단 한 줄기 빛의 광원(光源)이라고 찬양했던 모스크바는 실상 가장 끔찍한 범죄가 기획되고 실행되는 암실이기도 했다.

스탈린 비판은 이미 그의 생전에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1937)에서 시작됐고, 그의 사후에는 56년 2월의 제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제1서기 흐루시초프가 본격화했다.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흐루시초프의 비밀보고는 당규범의 파괴와 충실한 간부들의 숙청, 독소 전쟁 초기의 외교적ㆍ군사적 과오,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테러를 스탈린의 잘못으로 지적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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