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수도 뉴델리보다 많은 바이어들이 활동하고 있는 인구 1,200만명의 거대도시 뭄바이.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인도 시장 성장잠재력을 겨냥,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전인 1997년 10월 이 곳에 현지 무역관을 개설했다.
하지만 뭄바이무역관은 1년도 채 안돼 '환란(換亂) 극복'대세에 밀려 문을 닫아야 했다.
뭄바이와 함께 세계 선진 산업기술이 모이는 유럽 최대 박람회 도시 하노버와 미국 휴스턴, 샌디에이고, 보스턴, 중국 우한 등 10개의 현지 무역관도 폐쇄됐다.
중소 기업 해외시장 개척의 손발이자 국가 통상정책의 '촉수'인 KOTRA 해외무역관은 IMF이후 무려 17개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대외 통상 네트워크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KOTRA 뿐만이 아니다.
무역관과 함께 국가 3대 통상 인프라로 꼽히는 대기업 종합상사 지사망은 최근 3년 새 절반 규모로 축소했고, 산업자원부 상무관은 98년 23개국 34명에서 19개국 25명으로 줄었다.
여기에는 뉴라운드 협상을 비롯한 전세계 통상관련 정보가 집중되는 세계무역기구(WTO)도 포함됐다. 현지에서 무역금융 등 서비스와 통상정보를 제공해 온 각 은행 해외 지점과 출장소 등도 은행에 따라 최대 70% 가까이 폐쇄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무역의 날 치사를 통해 '무역관체제 강화'를 역설했고, 국회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정부기관 및 정부투자기관 해외사무소 증설을 주장해 왔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정부조직 구조개편(조직 축소) '쿼터'에 묶여 무역관ㆍ상무관 신ㆍ증설은 아예 말도 못 꺼내는 상황이다. KOTRA의 고위 관계자는 "주어진 조직과 인력으로 마른 수건 짜듯 쥐어 짜고 있지만 이미 한계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실제로 정부와 KOTRA가 중소기업 수출시장 개척 프로그램으로 장황하게 홍보한 무역관 지사화사업은 인력 및 조직난으로 참가 희망업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중소 수출업체들의 불만도 증폭되고 있다.
콜레스테롤 저하 기능성식품을 개발해 유럽시장 진출을 준비중인 바이오벤처 K사 신모 팀장은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에 자문을 구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했고, 동구지역의 경우 무역관 축소로 정보 수집 통로조차 없었다"며 "현지인을 채용해 독자적인 해외사업본부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최근 수출유망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56.6%가 '해외시장 및 바이어 정보부족'을, 43.4%가 '제품 해외홍보 곤란'을 호소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호(朴泰鎬)교수는 "통상 인프라의 촉수를 다 잘라낸 채 안방만 지키면 된다는 식으로는 '때리면 막는'앉은뱅이 통상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商社 해외지사 절반 줄어
1980년대 말 일본 무역진흥회(JETRO)와 가전 메이커들은 중남미 지역의 정치ㆍ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일제히 철수했다. 반면에 우리 기업들은 어려움을 감수하며 버텼다.
그 결과 90년대 이후 중남미 시장이 살아나면서 VTR과 컴퓨터 등 가전시장은 우리 업체들의 독무대(수입시장 점유율 70%)가 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김태랑(金太郞) 무역진흥본부장은 "경위와 배경은 다르지만 중남미 시장을 빼앗긴 일본의 실패를 우리나라가 이제 겪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대외 통상 네트워크의 약화에 대한 경고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2년여 동안 줄곧 위축돼온 민ㆍ관 해외 무역 인프라가 IMF체제 이전 수준으로 교역규모가 회복된 지금까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통상의 3대(大) 네트워크로 꼽히는 대기업 종합상사와 KOTRA 무역관, 산업자원부의 상무관 가운데 당장 종합상사 해외지사는 IMF체제 이전에 비해 거의 절반 규모로 감축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금과 인력, 무역 노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지원창구인 KOTRA 무역관. 97년 118곳에서 2년 새 무려 17곳이 폐쇄됐다.
남아 있는 사무소도 1, 2명의 직원들이 현지 국내기업 활동 지원과 통상 관련 동향 및 정보수집, 외국인 투자유치 업무까지 도맡아 허덕이는 실정이다.
경기 부천의 통신부품 수출업체 D사의 L모(53)상무는 "무역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현지 개황자료나 참고자료 수준"이라며 "특히 남미나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의 경우는 아예 기대조차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무관 조직은 더욱 열악하다. 98년 5월 23개국 27개 공관에 34명이었던 상무관은 현재 19개국 22개 공관 25명으로 축소됐다. 파견 직원의 직급도 낮춰 상대국과의 협상력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덤핑, 보조금, 세이프가드, 섬유 원산지규정, 수입허가 절차 등 각종 협정과 분쟁절차가 진행중인 세계무역기구(WTO)에는 주재원이 아예 없다(99년 2명).
우리의 2위 수출시장이자 1위 투자처인 유럽연합(EU)에도 과장급 1명이 조선, 자동차, 철강 등 분야의 무역마찰 등 현안을 도맡고 있고, 중국 베이징(北京)과 이란, 러시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도 아예 없거나 1명만이 사실상 경제분야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산자부가 최근 무역규모 100억달러당 국가별 상무관 규모를 비교한 결과 99년 현재 무역 경쟁국인 태국은 8.0명, 호주 7.9명, 대만 2.5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고작 0.9명에 그쳤다.
무역협회 조건호(趙健鎬) 부회장은 "해외의 통상 네트워크는 한 번 와해되면 회복하는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든다"며 "첨예한 경제전쟁시대에 한 걸음 뒤쳐지면 따라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역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자동차공업협회의 경우 약 300여명의 로비스트가 미국 의회나 정부를 상대로 활동하고 있다"며 "한ㆍ미 자동차 통상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과연 우리 자동차공업협회는 그간 무엇을 했는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대중국 마늘분쟁의 '유탄(流彈)'을 맞은 석유화학업계의 대응은 민간 통상네트워크의 대표적 취약 사례.
중국의 과잉설비ㆍ과당경쟁 체제에 허덕여 온 국내 유화업계로서는 중국의 보복 금수조치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다 뒤늦게 현지에 유화협회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빈손으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역별 특성과 '안면'이 중시되는 중국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사후 약방문'은 의미가 없다"며 "사전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상시적인 통상 로비를 벌여야 했다"고 꼬집었다
산자부 관계자는 "사업자단체들이 회원사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좋지만 대정부 로비 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미국의 해외 상공회의소 조직이나 일본의 업종별 사업자단체 등 비정부 통상 네트워크의 활동을 보면 경제 대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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