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유학 제 1호 화가'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활동했던 월북화가 배운성(裵雲星ㆍ1900~1978)의 잊혀졌던 작품이 대량 발굴돼 국내에 돌아왔다.최근 프랑스에서 귀국한 불문학자 전창곤(43)씨는 "배운성이 유럽 유학시기 그린 전성기 작품 중 '가족도''제기차는 아이들' '자화상' 등 49점을 입수해왔다"며 9월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3개월 동안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운성이 유럽에서 활동할 때 그린 작품이 국내에서 전시되기는 처음이다.
1922년 한국 미술계에서는 최초로 독일에 유학한 배운성은 40년 귀국할 때까지 18년 동안 당시 세계미술의 중심이던 베를린과 파리화단에서 활동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서울 갑부집 일꾼이었던 그는 주인 아들의 말동무가 되어 유학의 행운을 잡았다가 미술공부에 전념하게 됐다.
27년 파리 살롱 도톤전 입선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미전 1등상을 비롯해 국제미전에서 잇따라 수상했고 당시 세계 3대 화랑 중 하나로 꼽히던 파리 샤르팡티에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등 유럽 화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그림은 유럽에서 그린 그림들까지 조선적 토속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판화작업에도 열정을 쏟았다. 귀국 후 홍익대 미술학과 초대학과장까지 지냈지만 한국전쟁 때 월북하는 바람에 남한에서는 잊혀져 왔다.
그의 작품 또한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2차 대전 때 귀국한 그는 당시 작품 167점을 파리의 공동 아틀리에 남겨둔 채 돌아왔다.
유럽이 안정을 찾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갈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유럽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의 작품도 여러 곳을 전전했다.
월북 후 북한 미술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배운성은 평양미술학교 교수, 평양 만수대창작사의 대표작가로 활동하다가 1978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판화로 최초로 형상화한 그는 88년 해금될 때까지 남한에서는 금기의 미술인이었다.
국내에 남아있는 그의 그림은 10점 가량이며, 이중 일부는 '근대를 보는 눈'전(국립현대미술관, 1997년)과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1998년)에서 공개된 바 있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전창곤씨는 99년 우연히 한 프랑스 화상이 배운성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2개월간의 끈질긴 협상 끝에 입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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