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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지나치게 성공한 동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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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지나치게 성공한 동물' 인간

입력
200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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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12일 세계 인구가 드디어 60억을 돌파했다. 60억 명 째 인간이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어느 시각에 태아날 지를 정확하게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그러나 그 상징적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기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예방 중이던 동구권 어느 나라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한 아기를 졸지에 유명하게 만들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지구촌 어디에선가는 신나는 축구 경기가 벌어졌다. 전후반 45분씩에 중간 휴식시간 10분 등 그럭저럭 두 시간에 걸친 경기 도중 지구촌에는 매 분 약 250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100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2만여 관중이 축구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똑같은 규모의 경기장을 꽉 메울만한 숫자의 사람들이 늘어난 셈이다. 실로 가공할 번식력이다.

생물의 번식력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나타내기 위하여 미국의 생태학자가 다음과 같은 계산을 해보았다. 지구에 사는 생물들 중 가장 작은 부류인 박테리아를 1분에 한번씩 분열하고 일단 태어나면 죽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1분 후에는 두마리, 2분후에는 네마리, 그런식으로 증가해 나갈 것이다.

개체 수준에서 보면 현미경으로 봐야만 볼 수 있는 미세한 단세포 생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 생태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증식을 시작한 지 불과 36시간 즉 하루 반만 지나면 박테리아의 '살'이 지구의 표면을 덮는데 우리들 정강이의 반 이상을 덮게 된 다는 것이다.

또 그로부터 한 시간만 지나면 우리키를 훌쩍 넘고, 그렇게 몇달이 지나면 오로지 그 박테리아의 증식으로 인하여 지구이 부피가 저 넓은 우주 공간을 향하여 빛의 속도로 팽창해갈 것이라 한다. 단 한 종 그것도 몸집이 가장 작은 종의 힘이 이 정도다.

단 세포생물인 박테리아가 이 정도의 번식력을 과시할 수 있다면 코끼리나 고래의 번식력은 또 어떠할 것인가. 생물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엄청난 번식력을 지닌다.

다만 태어난 개체들중 대부분은 환경이 적응하지 못하고 번식을 할 수 있는 연령에 이르지 못한 채 죽어 사라지기 때문에 이 지구가 유지되는 것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생물 개체군이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해보면 거의 예외없이 한 동안은 기하급수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서서히 어느 수준에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생태학에서는 그 수준을 환경의 수용능력(carrying capacity)이라 부른다. 어느 생물이든 그 개체군의 도표로 표시하면 이른바 S형 곡선을 그린다, 이 같은 경향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학자는 바로 다름 아닌 경제학자인 맬서스(Thomas Malthus)였다.

그 유명한 '인구론(1798)'에서 맬서스는 식량의 고갈, 질병, 전쟁, 그리고 의도적인 자제 등으로 인해 인류집단도 일정 수준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윈은 바로 이 맬서스의 이론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얻어 자연션택의 이론을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그런 맬서스와 다윈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류집단은 지구상에서 아직도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는 거의 유일한 생물이다.

구태여 다른 예를 찾자면 몇몇 외래종들이 한시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보일 뿐이다. 20세기초 미국에 이주해 살고 있던 영국인들은 미국을 '영국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새들을 미국에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대부분의 새들은 낯선 땅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 중 유일하게 유럽산 찌르레기는 불과 한 세기만에 참새를 누르고 미 대륙에서 가장 흔한 새가 되었다. 그들 개체군의 성장은 전형적인 기하급수적 곡선을 그린다.

이데 유럽산 찌르레기는 캘리포니아에 도달했으니 곧 수렴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인간은 어떤가. 불과 6백만 년 전 아프리카의 관목숲에서 내려와 초원을 헤매기 시작했을 무렵에서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한 1만 년 전까지 인간은 그저 하나의 평범한 영장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농업혁명의 덕으로 단위면적 당 생산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며 인구도 함께 급상승하게 되었다.

그 후로 산업혁명을 거치며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으로 잠시 주춤한 것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증가하기만 한 것이 바로 우리다. 그래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거들먹거리게 되었다.

최근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인구가 무려 93억에 달할 것이라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통계에서 보니 지난 해 제주도에서 하루 평균 24명씩이나 태어났다니 말해 무엇하랴.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나열하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생물 다양성의 감소, 식량자원의 고갈, 대기 오염, 수질 오염, 쓰레기 등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우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요인들의 배후에는 오로지 하나의 궁극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지나친 인구의 증가가 그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이 문제의 근윈이요 핵심이다. 성공도 지나치면 고민이 되는 법이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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