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택 옥상을 꼼꼼히 살펴보자. 우선 어김없이 올라있는 노란색 물탱크가 눈에 띈다. 집 전체 이미지를 일순간 망가뜨리는 그것은 집 장사꾼들의 값싼 건축철학의 산물이다.옥상에는 또한 낡은 의자와 책상, 이사 간 가게의 간판 등이 산적해 있다.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남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웬만한 부정은 저지를 수 있다는 우리 마음의 징표로 볼 수 있다.
화가 겸 미술평론가 강홍구(45)씨의 기본 시각은 이런 것이다. 그는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황금가지 발행)을 통해 사소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의 추악함을 폭로하고자 했다.
추악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이를 알리다 보면 언젠가는 시시한 것들도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시시한 것들로 25가지의 시각 이미지를 추려냈다. 전신주에 나붙은 웨이터 광고부터 길거리에서 파는 푹신한 곰 인형, 거대한 말씀의 집적체인 플래카드까지.
그는 이 속에 교묘히 숨어있는 권력과 자본의 횡포, 암암리에 강요 받는 사치와 허영의 논리, 조잡한 이미지와 감성의 허구를 철저히 들춰낸다.
대표적인 게 대형건물의 전광판이다. 그 '극장'은 소리를 낼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텔레비전에 나온 광고들만 내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광고 가사와 대사까지 모두 기억해낸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본 광고를 전광판을 통해 복습하고 내면화하며, 전광판은 그 거대함과 위치,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자본의 위력을 다시 한번 과시한다는 것이다.
지폐 역시 마찬가지다. 세종대왕이나 물시계, 경회루, 용 따위의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 뒤범벅된 지폐는 '기호를 미친 듯이 짝사랑'하는 권력 그 자체이다.
저자는 여기에 우리나라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이씨라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가 조선왕조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반증일 수 있다고 덧붙인다.
비판은 계속된다. 획일화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찢어진 청바지와 현란한 염색 머리는 오히려 대중에게 획일화를 강요했으며, 길거리에서 파는 가분수 모양의 곰 인형은 '귀여움'을 파는 전형적인 키치 상품이다.
축제와 즐거움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만국기가 '시골 학교의 작은 운동회를 세계의 모든 국가가 축하해 준다'는 빈곤한 상상력의 결과라는 지적은 가슴을 찌른다.
저자는 결국 모든 키치적 상품과 이미지에 대해 결사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저급하고, 진부하고, 장식적이고, 윤리적으로 부정한'그 모든 것들을 '키치'라고 정의할 때, 저자는 키치 미학의 허상을 정면에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고발은 또한 문화 유적이나 본격적인 예술작품을 대하면서도 이를 하나의 키치로 경험하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조소이기도 하다.
"예술 작품을 미적 또는 예술적 가치에 의해서만 감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작품의 유명세를 기초로 별다른 노력 없이 이미 알려진 사실만을 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모여든 사람들과, 감은사 3층 석탑 앞에서 탄성을 연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키치맨'인 것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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