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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芝溶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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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芝溶의 최후

입력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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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鄭芝溶)이 지인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950년 9월이다. 그 때 평양교화소(형무소)에 갇혀있던 납북인사 계광순(桂光淳ㆍ 작고)이 미군의 평양폭격으로 인한 혼란 통에 탈출해 남긴 회고록(나는 이렇게 살았다)에는 이광수 정지용 같은 문인들과 경기도경국장 출신인 옥선진 등 납북인사들과 같은 감방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뒷날 문학평론가 백 철(白 鐵ㆍ작고)과 만난 자리에서 그 때 일을 자세히 털어 놓았다.■춘원은 부처처럼 앉아 묵상에 잠기는 일이 많았고, 지용은 가끔 철창 밖을 향해 "나를 내놓아야 의용군에 나가지 않겠느냐"고 호통을 쳤고, 간수는 "너는 늙어서 안돼"하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백 철의 글로 남아 지용이 납북당했다는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평양에 끌려가기 전 인민군 정치보위부에 잡혀갔던 사실은 작가 최정희(崔貞熙ㆍ작고)에 의해 확인됐고, 그 후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던 일은 가족이 확인했다.

■지용연구가 김학동(金學東ㆍ전 서강대 교수)씨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9ㆍ28 수복 때 평양으로 이감돼 미군의 평양폭격 때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가족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시기가 문제다. 계광순은 자신의 탈옥을 9월 23일께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나온 조선대백과사전에는 지용이 1950년 9월 25일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9ㆍ28 이전에 지용이 평양에 이감됐고, 그 때 미군 폭격이 있었다는 의문이 남는다.

■3차 이산가족 상봉 때 서울에 왔던 지용의 둘째 아들이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됐으나, 궁금증은 더 꼬였다.

그는 10여년 전 북의 박상수 시인이 통일신보에 쓴 기사를 근거로 아버지가 북으로 가던 중 소요산 부근에서 미군 비행기 기총사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형은 이 부분에 말을 아꼈다. 동생 앞에서 납북됐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죽음의 진실에 관해서 조차 아들들의 입장을 다르게 한 이데올로기란 대체 무언가.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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