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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산다] (8)조기유학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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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산다] (8)조기유학 열풍

입력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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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내려는 사람서울에서 치과의원을 개업중인 C씨는 3월 중순 '드디어' 열다섯, 열두살 남매를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 보내게 됐다. 무려 3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이었다. C씨는 남매의 유학을 위해 한달에 한번꼴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학원을 통하면 간단했겠지만 어쩐지 께름칙했다. 몇번씩 미국으로 날아가 직접 학교를 고르던 C씨는 시애틀의 한 사립학교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그러나 남매와 동행하려던 부인이 문제였다. 대학원 입학허가를 손에 쥐고 학생비자를 받으려던 부인을 보고 대사관은 손을 내저었다.

C씨 가족을 '부모가 학생비자로 나갈 경우 자녀를 미국 공립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려는 '편법 조기유학' 미수범(?)들로 본 것이다. 통사정도 해보고 여기저기 청탁도 해봤지만 한번 거절된 비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었다.

일찌감치 학교를 자퇴하고 영어학원 등을 다니며 허송세월 하는 남매를 보다 못해 C씨는 유학원에 의뢰, 캐나다로 발길을 돌렸다. 이것 저것 따질 겨를도 없었다. C씨는 "3년간 고생했지만 애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란다면 고생도 보람이 될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2 보낸 사람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아들을 3년 전 미국 보스톤의 한 사립학교로 유학 보낸 어머니 L씨의 일과는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들의 성적은 서울 강남지역 학교에서 최하위권이었다. 도무지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사춘기를 맞아 성격마저 비뚤어지는 듯했다. 미술만은 꾸준히 '수'를 맞아오는 아들에게 '다른 환경에 가면 특기를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실낱 같은 희망을 걸었다.

3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L씨는 그때의 모험에 흡족해한다. 전화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는 밝아졌다. "교사들이 격려와 칭찬으로 아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해 노력한다더군요. 미술뿐 아니라 다른 과목의 성적도 톱이에요."

하지만 L씨는 막상 유학을 보내놓고 가슴 졸였던 시간을 떠올리면 아득하다고 말한다. 말이 안통한다며 울먹이는 아들의 전화에 가슴 쓰라렸고 조기유학생 탈선 소식이 보도될 때마다 가슴이 내려 앉았다. L씨는 하루에 20분씩 아들과의 전화통화를 거르지 않았고 일주일에 두번씩 꼭 편지를 썼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휴가는 아들의 방학 일정에 맞췄다. 편지가 이메일로 바뀌었지만 요즘도 L씨는 그 일을 거르지 않는다. 아들은 명문 디자인 스쿨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3. 돌아온 사람

K군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조기유학의 대열에 합류했었다. 유학원의 알선으로 고교1학년이던 1998년 9월 캐나다 밴쿠버 인근 사립학교를 찾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학교 환경은 유학원의 소개와도, 당초 생각과도 너무 달랐다.

어찌된 일인지 서양인보다 동양인이 더 많았고 한국학생도 100여명이 넘었다. 외로움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한국학생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술, 담배, 마약에 찌들었다. 가디언(보호자)은 있었지만 이름뿐이었다. 싸움 때문에 99년 5월 퇴학을 당했다. 퇴학당한 상황에서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요구하는대로 사설 교화기관에서 2주일간 교육을 받기도 했다. 뒤늦게 사정을 알아챈 어머니의 읍소에 K군은 지난해 1월 귀국했다. 2년의 세월을 허송하고 학비 등 5,000여만원을 날렸다. 그는 지금 2년 후배들과 같은 학년으로 서울의 한 고교에 재학중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1999년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초ㆍ중ㆍ고교를 다니다 이런저런 경로로 유학을 떠난 학생은 1만1,237명. 하지만 일선 학교와 유학원 등에서는 조기유학생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향도 뚜렷하게 바뀌었다. '도피성', '일부 상류층'이란 수식어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연봉 3,000만~4,000만원을 받는 샐러리맨들도 사교육비와 유학비용을 저울질하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고, '세계 200위권 서울대에 가느니 좀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뜻을 펴고 싶다'며 최상위권을 달리는 학생들도 유학원의 문을 두드린다.

3월 합격자를 발표하는 미국 주요 사립고의 한국학생 입학 경쟁률이 80대1에 이른다거나 60% 이상의 30~40대 학부모들이 '여건만 허락되면 조기유학 보내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2001년 한국사회에서 조기유학은 무시 못할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도도한 조기유학의 흐름에 이제 한국의 공교육이 답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묻지마 조기유학' 실패사례 많아

C(16)군은 흔히 말하는 조기유학 실패자다. 작년말 돌이키고 싶지 않은 6개월간의 미국생활을 마감했다. C군은 "어머니 친구 말만 믿고 덜컥 떠났다"며 "시간을 두고 꼼꼼히 준비를 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C군은 최근 '재유학'을 위해 신문과 인터넷, 유학원 등을 뒤지며 유학정보를 차근차근 모으고 있다.

조기유학은 '말'이 많아서 '탈'이 많다. 워낙 범위가 넓어 뜬소문과 언뜻 들은 단편적인 정보가 성공과 경험으로 포장돼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S유학원은 최근 비수기인데도 매일 10여건의 조기유학 관련 전화문의가 오고 있다.

질문은 대부분 "미국의 무슨 학교가 최고라면서요", "반에서 꼴찌 하던 애가 무슨 학교를 갔더니 1등을 했다면서요"하는 식이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를 막무가내로 확인하는 수준이다.

인근 G학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소 1년이 걸리는 유학절차를 무시한 채 3개월 안에 유학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 학원 관계자는 "잘못된 정보를 맞다고 우기는 경우엔 난감할 뿐"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치밀한 준비만이 조기유학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사전정보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

유학원 홈페이지에서 조기유학 전반에 대한 지식을 얻은 후 수준에 맞는 학교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입학기준 등 필요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조기유학에 성공한 이들이 만든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검색해 유학 시나리오를 짜는 것도 방법이다.

유학원에서 운영하는 '그룹상담'에 참여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외국 대사관이나 문화원 등에서 주관하는 유학박람회를 찾아 지금까지 습득한 정보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도 중요하다.

유학원을 찾을 때도 터무니 없이 수수료가 낮거나 단기일내에 유학이 가능하다고 광고하는 곳은 일단 피하는 것이 좋다. 아이의 실력에 관계없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추천하는 곳도 마찬가지.

지구촌유학원 문현호(文賢浩) 원장은 "조기유학은 '왕도(王道)'가 없는 만큼 다양한 정보 습득, 전문가와의 꾸준한 상담을 통해 대상학교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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