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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滿洲國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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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滿洲國 수립

입력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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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3월1일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신경(新京: 지금의 長春)을 수도로 만주국(滿洲國)이 수립됐다.국가 원수에 해당하는 집정(執政)은 청조(淸朝)의 폐제(廢帝)인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였다. 연호는 대동(大同).

만주국은 그 전해인 1931년 9월18일 일본군이 류탸오거우사건(柳條溝事件)을 빌미로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 전역을 점령한 뒤 세운 일본의 괴뢰 국가다.

류탸오거우 사건이란 일본 관동군(關東軍)이 만주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봉천(奉天: 지금의 瀋陽) 외곽의 류탸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滿鐵)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측 소행이라고 몰아부친 사건이다.

일본이 푸이를 앞세워 만주국을 세운 것은 대륙 침략 전쟁의 병참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1932년 9월 일만의정서(日滿議政書)에 조인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고, 이어서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도 만주국을 승인했다.

34년 제정(帝政)이 수립되면서 연호를 강덕(康德)으로 고친 만주국은 일본인 조선인 만주인 몽골인 중국인의 오족협화(五族協和)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표방했지만, 광동군 사령관이 정치ㆍ군사적 실권을 장악했고 경제권도 그 곳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만주사변과 만주국 수립 이후 국제 연맹은 중국의 제소(提訴)에 따라 리턴 조사단을 파견하고 그 보고서에 의거해 일본군의 철수를 권고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33년3월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국내 정치의 파쇼화와 맞물린 일본의 이런 태도는 필연적으로 37년 이후의 중일전쟁과 41년 이후의 태평양 전쟁을 예비하고 있었다.

만주국은 45년 8월 소련군이 둥베이지방으로 들어와 관동군을 제압한 뒤 곳곳에서 민중 반란이 일어나 무너졌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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