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안 떨려요." 그랜드슬램 6관왕, 투어통산 46승을 거둔 세계4위 앤드리 애거시(31ㆍ미국)와의 대결을 하루 앞둔 지난 27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이형택(25ㆍ삼성증권)이 묵고 있는 호텔로 전화를 걸었을 때 이처럼 담담하게 말했다.그런 반응 속에는 지난해 US오픈 16강전서 맞붙은 피트 샘프러스(29ㆍ미국)와 달리 애거시의 서브가 약해 해볼만하다는 자신감과 함께 향상된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프로테니스협회(ATP) 투어 사이베이스오픈(총상금 40만달러) 1회전이 열린 28일 낮12시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아레나. 수백명의 동포와 유학생들의 응원 속에서 세계 82위 이형택은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경기전 현지 전문가들은 애거시의 코치 브래드 길버트의 말을 인용, "이형택은 성가시고 빈틈없는 베이스라이너임에는 틀림없지만 애거시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며 애거시의 완승을 예고했다.
하지만 2시간 넘는 접전 끝에 1-2(5_7 6_3 3_6)으로 아깝게 패해 한국 테니스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애거시는 최근 52주 동안 성적을 토대로 한 세계랭킹서 4위, 올 시즌 ATP챔피언스레이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세계최강이다.
▦ 드라마틱한 1세트
톱시드 애거시가 먼저 주도권을 잡았다. 이형택은 첫 서브게임을 비롯, 내리 2게임을 잃었다. 하지만 3번째 게임을 퍼펙트로 따낸 뒤부터 제 궤도에 접어들었다. 4번째 애거시의 서브게임을 듀스 끝에 브레이크하더니 자신의 서브게임도 거푸 따내며 게임스코어 3-2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시소게임이 이어져 게임스코어 4_5로 뒤집혔다. 이형택이 애거시의 서브게임을 또 한번 브레이크, 5-5로 대등하게 경기를 끌고 갔다. 하지만 첫 고비서 애거시가 한 수 위 기량을 선보이며 5-7로 세트를 내줬다.
35_38로 포인트에서 대등, 이형택으로서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 애거시를 혼쭐 낸 2세트
서브에이스 2-1, 포인트 29-24 등 모든 면에서 이형택이 애거시를 압도한 세트였다.
게임스코어 3-2로 한발 앞서나간 이형택은 내리 2게임을 더 보태며 5-2로 순시간에 대세를 갈랐다. 불과 24분 만에 게임스코어 6-3으로 세트를 가져갔다.
▦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이형택
애거시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게임스코어 3-2를 만들었다. 게다가 이제 이형택의 서브게임. 기적을 기대하는 테니스팬 들은 숨이 막힐 듯했다. 하지만 40-30으로 앞서가던 이형택이 백핸드로 승부수를 던졌지만 아깝게 라인을 벗어났다.
결국 게임스코어 3-3을 허용한 이형택은 내리 3게임을 놓치며 게임스코어 3-6으로 마지막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또 한번 톱랭커들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애거시 "샷에 당황...운 좋았다"
이형택이 코트를 떠나는 순간 새너제이 아레나에 있던 관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그만큼 이형택은 세계 최강 앤드리 애거시와 인상깊은 경기를 펼쳤다. 애거시는 스폰서초청으로 톱시드를 받았고, 이형택은 시드를 받지 못한 세계 82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호주오픈 이후 줄곧 투어를 건너뛰는 바람에 실전감각이 무뎌졌다고 해도 애거시로서는 다크호스를 만나 자존심을 구길뻔 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애거시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형택의 샷이 너무 날카롭고 강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반면 통역을 통해 공식인터뷰에 응한 이형택은 환하게 웃으면서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이상윤 삼성증권 코치는 "애거시와 이형택은 게임을 풀어가는 요령이 달랐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대신 스크로크랠리에서 이형택이 전혀 밀리지 않았던 것은 큰 위안이었다. 국내에 머물고 있던 주원홍 감독은 우선 서브를 좀 더 안정적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
애거시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고도 곧바로 자신의 서브게임을 내줘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다. 또 경험이 짧아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한 것도 여전했다.
주 감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경험축적 밖에 없다고 보고 "플로리다주로 옮겨 투어를 2개 정도 더 뛴 뒤 윔블던을 겨냥, 유럽무대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형택 인터뷰
▲ 3세트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듀스가 몇 차례 오고 갔고 어드밴티지 상황에서 마음먹고 백핸드 샷으로 승부수를 던졌는데 정말 베이스라인을 공 1개 정도 벗어났다. 칠 때는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
▲ 지난해 US 오픈에서 피트 샘프러스 맞붙었을 때와 차이점은.
"새벽 잠도 설칠 만큼 긴장했다.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세계 정상급스타와 겨루면서 노하우가 쌓인 것 같다. 마이클 창, 그렉 루제드스키, 노르만 구스타프슨 등 톱랭커들과 연습을 하면서 부담을 많이 없앴다."
▲ 샘프러스와 애거시의 차이점은.
"샘프러스는 서브와 발리가 뛰어났고, 애거시는 상대적으로 서비스리턴 후 스트로크가 좋았다. 나는 애거시가 편했다."
▲ 챌린저급에서 본격 투어생활을 하고 있다. 무엇이 다른가.
"경기장 시설에 우선 놀란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새너제이 아레나도 NHL팀이 운영하는 아이스링크에 코트를 임시로 만들었지만 시설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진다.
애거시와 입장할 때도 마치 NBA 선수들을 소개하는 것처럼 경기장의 조명을 모두 소등하였다가 나에게만 조명을 비추어 주었다."
▲ 시간이 남을 때 어떻게 보내는가.
"얼마전 컴퓨터를 구입, 호텔에 돌아오면 인터넷을 한다. 홈페이지에 들러 팬들의 글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삼국지도 8권까지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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