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재벌그룹의 부당내부거래가 말썽이었다. 이제는 공기업조차 같은 사정인 모양이다. 공기업들이 저마다 자회사들을 설립해 놓고 다른 경쟁업체들과 차별하여 우대해 왔다고 한다.자회사들에게 별도로 인건비를 지원하거나 공사물량을 사전배정하고 부당하게 높은 값을 쳐주는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등 부당지원행위가 관례였다는 것이다.
또 독점적 사업자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여 일반 하도급 거래업체들에게 각종 비용을 전가하는 등의 불공정거래행위도 적발되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하도급 중소기업들을 핍박하는 재벌 대기업들의 횡포와 무엇이 다른가.
해당 공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므로 더 귀추를 두고 보아야 옳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결과로만 보더라도 개혁이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다.
물론 재벌그룹내의 부당내부거래와 공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는 본질적으로 조금 다르다.
재벌그룹내의 부당내부거래는 경쟁업체들을 차별하는 단순한 불공정거래로만 끝나지 않는다. 나쁜 쪽으로는 지배적 대주주가 일반소액주주들의 재산을 빼돌리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
최근 시민운동이 원위치로 돌려놓은 몇 가지 사례가 이런 경우다. 반대로 좋은 쪽을 보면 전망은 좋으나 현실적으로 금융이 어려운 업종을 지원하는 효과를 거둔다. 반도체산업의 성공은 이러한 지원이 효과를 본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에 공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는 대체로 그저 단순한 불공정거래 수준이다. 자회사는 모기업의 소유일 뿐 어느 지배적 대주주의 전유물이 아니다.
첨단업종에 자회사를 차리는 일도 공기업의 역할과는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반 소액주주의 돈을 빼돌리는 일이나 첨단업종을 지원하는 효과는 공기업 부당내부거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자회사도 공기업인데 망한다면 결국 국민부담이 되므로 경영상태를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자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우대해 주어야 존속할 자회사라면 무엇때문에 설립한단 말인가. 공기업 자회사의 업무는 결국 모기업의 본연 업무를 지원하는 보조 업무에 그친다.
민간의 외주업체들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인 것이다. 경쟁적 민간업체와 차별하여 우대해야 하는 자회사라면 결코 존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사실 현존하는 수많은 공기업 자회사들이 업무수행상 반드시 필요하여 설립되었는지 의심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공기업 내부의 인사적체 현상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만든 자회사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간기업들에게 하도급주어도 좋을 일들을 왜 굳이 자회사를 차려 놓고 맡긴단 말인가. 공기업 민영화는 자회사 매각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이해관계보다는 인간적 관계로 엮어진 사회이다. 효율성을 희생하더라도 함께 일해오던 동료들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미가 자회사를 우대하는 불공정거래행위로 나타난 셈이다. 어디 공기업뿐인가.
우리 편과 남의 편을 편가름하고 우리 편을 철저히 보호하고 우대하는 행태는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가 뼈저리게 느낀 교훈은 인간미 넘치는 사회생활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너무도 잠식해 왔다는 사실이다.
왜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을 퇴출시키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여야 하는가. 모든 개혁은 결국 효율성의 잣대로 과거 인간미 넘치는 사회생활방식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 동안 금융, 기업 및 노동부문에서 우리의 전통적 정서로는 인정상 차마 수용하기 어려운 구조조정을 개혁의 이름으로 칼질하듯 추진하면서 아픔을 감수해 왔다.
그런데 정작 공공부문만이 구태의연하다면 정부가 무슨 명분으로 이후의 개혁을 주도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공공부문부터 개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이승훈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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