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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칼럼] 3년전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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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칼럼] 3년전 27분

입력
2001.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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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정사에서 가장 짧은 대통령 취임 연설은,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을 꼽는다. 겨우 133단어 분량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아마 1분 남짓이었을 것이다.반면 가장 긴 대통령 취임 연설의 기록은 제9대 해리슨 대통령의 차지로 남아 있다. 마침 그의 취임식 날은 춥고 비가 내렸으나, 새 대통령은 외투도 입지 않은 채 8443단어의 장광설(長廣舌)을 폈다.

그 탓이었던지, 그는 취임식 직후 폐렴에 걸려 30일만에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짧은 대통령 재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세계 명(名)연설집 따위를 펼쳐 보면, 생각 밖에 짧은 명연설이 많다. 짧되, 알맹이가 있고, 격조가 높으며, 나름의 설득력을 지닌 연설들이다.

그런 짧은 명연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명연설은 단연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11월19일)이다.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정부"라는 민주주의 정의로 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연설은 전체 분량이 272단어, 10개 문장뿐이다. 연설 시간은 2분 남짓, 민주주의란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의 정수를 설파하고 있다.

이 게티스버그 연설과 관련하여, 나는 웃지 못할 취재 경험이 하나 있다. 아주 오래 된 얘기지만, 경찰 공무원 채용을 위한 면접 시험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다음은 그 때 들은, 학사 출신 응시자와 면접관의 문답내용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of the people 입니다"

"사회주의는?"

"for the people입니다"

"그럼 by the people은 무슨 주의인가?"

"ㆍㆍㆍ"

게티스버그 연설의 여운은, 3년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연설에서도 들을 수가 있었다. "저는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루어 내겠습니다"란 대목이 특히 그렇다. 취임 연설에서 밝힌 '국민의 정부'라는 표방도 마찬가지다.

27분에 걸친 취임연설에서, 김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여러분(野黨)과 같이 상의하겠습니다ㆍㆍㆍ금년 1년만이라도 저를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작지만 강한 정부, 이 것이 국민의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이 다짐들은 간 곳이 없다. 정치는 구태 그대로요, 여ㆍ야 관계는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다. '작지만 강한 정부'도, '작지만'은 이미 물 건너 갔고, 남은 것은 '강한 정부'의 재다짐 뿐이다.

그러니, '국민의 정부' 3년의 화두는 '강한 정부'를 맴돌 수 밖에 없다. 도대체 '강한 정부'란 무엇인가.

그런 가운데, '국민의 정부' 3년의 이정표처럼 떠오른 것이 이른 바 3당 공조(共助)에 의한 여대(與大) 정국개편설(說)이다.

요컨대 115(민주당) + 20(자민련) + 2(민국당)>133(한나라당)의 부등식(不等式)을 성립시킨다는 얘긴데, 이렇게 확보한 국회의석 과반수의 여세를 다음 대통령 선거 때까지 몰아 갈 수가 있다면 ?이런 속셈을 하는 측도 있을것 같다. 과연 '강한 정부'의 함축이 이런 것일까.

하지만 이 단순 계산은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국민의 정부' 3년을 평가하는 국민의 시각이다. 신문에 보도된 여론 조사마다, 그 평점이 "일을 잘했다"

그 평점은 1년 전, 2년 전 보다 크게 낮아지고 있다. 이 정부가 갈수록 민심의 과반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남는 물음은 이런 것이다.

'강한 정부'의 강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국회 의석인가, 민심인가.

3년전 27분을 되새기며, 아쉬움을 곱씹는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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