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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포로 4명도 북한가족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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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포로 4명도 북한가족 만나

입력
2001.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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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교환 때 안 오니까 부모님이 사망처리 했지. 어머니는 형이 혹시나 올까 하고 포로들이 돌아오는 청진까지 갔었어."반공포로 출신 김한천(71ㆍ전주시 송천동)씨는 27일 북측 남동생 근천씨가 전해 준 어머니 얘기를 듣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17세 때 인민군에 차출돼 부모님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했던 김씨는 여동생 기숙씨가 전해 준 부모님의 빛바랜 사진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김씨는 1950년 10월 강원도 철원에서 남하하다 포로로 잡혀 부산 동래와 거제도, 논산 포로수용소로 옮겨 다녔다.

반공포로로 남한을 택해 북측 가족들과 생이별한 김씨는 다시 국군에 입대, 월남전에 참전하는 등 20여년간 군에서 복무했다.

동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해 부모에 대한 기억, 고향(평남 대동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근천씨 등이 피붙이임을 확인한 김씨는 동생들에게 감귤 한 박스씩 선물로 주었고 손목시계도 일일이 채워 주었다.

이번 방북단에 반공포로 출신은 이 밖에도 장형섭(77ㆍ대전시 동구) 최인식(71ㆍ대전 대덕구) 최창환(70ㆍ경기 양평)씨 등 3명이 더 있다. 이들 모두 고향이 북쪽으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남한에 잔류했다.

장씨는 전쟁으로 가족이 모두 숨졌을 것이라고 판단, 거제수용소에서 남쪽을 택했는데 이번에 여동생과 남동생 둘과 만났다.

누나와 동생을 만난 최인식씨는 가족들이 월남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남쪽을 선택했었다.

19세 때 인민군에 차출된 최창환씨는 인천 상륙작전 때 북으로 퇴각하지 못해 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다 석방된 뒤 국군에 재입대 했다. 그는 현재 농사를 짓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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