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에 이은 구제역 엄습으로 영국이 휘청거리고 있다. 1996년 이후 광우병으로 수백만마리의 소를 도축ㆍ폐기해온 영국 정부는 돼지 양 염소 사슴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체제에 돌입했지만 이미 국가 전반에 타격은 치명적이다.특히 20여년만에 나타난 구제역은 26일로 12번째 발병가축이 확인되면서 축산을 기반으로 한 농업이 빈사상태다. 영국 정부는 일주일간 가축거래는 물론 가축이동 마저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내렸다.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최근 7,000마리의 가축을 도축했고 유럽은 영국산 가축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영국 당국은 약 2만5,000마리 이상이 감염된 동물과 접촉했고 대략 10만마리 이상을 도축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역으로 인한 농가와 음식제조업자의 피해는 대략 10억파운드(1조 8,000억원) 이상으로 잡고 있다. 지난 2년반에 걸친 광우병파동으로 총 16억파운드(3조원)의 손실을 입었고 지난해 농가 총수입이 27%나 하락한 상태에서 닥친 구제역은 농민의 생존기반을 앗아가고 있다.
소득저하와 스트레스로 1999년에만 농민과 농장지배인 56명이 자살했으나 올해에는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당국은 우려하고 있다.
벤 길 농민회장은 26일 토니 블레어 총리를 면담한 자리에서 "이번 구제역파동은 농민 전체에 악몽"이라며 "농민은 손쓸 생각을 못하고 넋나간 표정만 짓고 있다"고 호소했다.
블레어 총리는 BBC방송을 통해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시인한 뒤 "적절한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닉 브라운 농무부장관도 26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농업장관 회의에 참석, 파운드화의 강세로 인한 영국 농민의 피해 보상 차원에서 2억파운드에 이르는 지원금을 요청했다.
구제역파동은 정치일정은 물론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르면 4월초 실시될 예정이던 총선이 5월초로 미루어졌다. 사냥개를 동원한 사냥 금지, 뉴캐슬 경마대회 취소, 웨일스 대 아일랜드의 럭비경기 취소 등 영국의 명물이 사라졌다.
정부는 시민들도 집에 머물러 있기를 권유했고 야영장과 낚시터 사용을 금지했다. 감염지역에 위치한 3개 학교가 휴교했다. 공군은 23일로 예정됐던 2주훈련 중 감염지역에서의 지상훈련을 긴급히 뺐고 3월1일 스코틀랜드 등에서 실시할 예정이던 낙하와 행군 등 훈련은 취소했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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