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들은 기억의 창고 안에 쌓여간다. 그 기억들은 낱낱이 되살아 날 까닭이 당장 있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삶의 어느 고비에서는 거의 잊혀진 그 기억의 잔재들이 생생하게 펼쳐져 재현될 때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 집행 직전 5분 동안, 살아온 날의 일들이 일제히 떠올랐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아슬아슬한 사면 소식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라는 것은 분명히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 편입되어 현재와 미래에 연결된다. 나에게도 지난 날의 여러 일들이 오늘과 함께 있다. 어찌 한 두가지이겠는가.
잊을 수 없는 일 중에서 오늘은 잊을 수 없는 사람 하나가 유난히 떠오른다. 그 사람은 1979년 12월에 만났다.
나는 그 무렵 YH사건 배후 조종이라는 것으로 국가보위에 관한 법 위반 피의자로 감옥에 있었는데 한 쪽 귀의 고막이 파열된 상태였다.
YH사건에 앞서 여름에 카터 당시 미국대통령 방한 반대 시위를 주도했을 때의 고문으로 청각이 마비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스스로를 돌볼 겨를도 없이 시국의 반전에 휩쓸려 귀머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얼마후 박정희 전대통령의 장례 뒤 주거 제한의 조건으로 풀려 나왔다. 그리고 민음사 박맹호 사장의 소개로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의 김종선 교수에게 귀 수술을 받았고, 수술로 생긴 고막으로 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그 뒤 나머지 한쪽 고막 수술도 예약해놓았지만, 80년 5월 신군부에 의해 다시 수감되었다.
당시는 문인주소록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릴 정도로 공포 시대였다. 그런데도 나는 10여일 단식 끝에 육군교도소와 지방교도소를 거쳐 서울로 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김종선 교수가 국군통합병원과 서울구치소 의무과를 드나들며 내 귀를 치료해주었기 때문이다. 두 귀는 바로 온전해졌다.
그때는 아무도 나와 관련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김교수의 탁월한 의술과 깊은 우정과 인간애를 통해서 내 청각과 생명에 큰 은덕을 입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이를 만나면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이와의 술 한잔은 그러므로 절실하다.
고 은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