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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 명인전은 역시 패기보다 '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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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 명인전은 역시 패기보다 '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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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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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전은 변화의 무풍지대?신예 강호들의 거센 돌풍이 예고됐던 제32기 SK엔크린배 명인전(한국일보사 주최ㆍSK 주식회사 후원) 본선 무대. 아직 10개월 대장정의 초반에 불과하지만 신예 진영의 분위기는 의외로 잠잠하다. 패기와 도전정신보다는 관록과 연륜이, 피 끓는 신참보다는 백전의 노장들이 초반 판세를 압도하고 있다.

2월 말 현재 8명의 기사들이 모두 한 판 이상씩 1라운드를 치른 결과 '낙하산 부대'에 해당하는 전년도 시드 배정자 4명(조훈현 9단ㆍ유창혁 9단ㆍ양재호 9단ㆍ최명훈 7단)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무패행진 중이다.

반면 한국기원 소속 기사 전원이 참여하는 1?차 예선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본선리그에 진출한 예선 통과자들(임선근 9단 윤현석 6단 이성재 6단 목진석 5단)은 패전의 연속. '신 4인방'의 원조로서 신예 반란의 선봉에 섰던 윤현석은 벌써 2패로 도전권에서 멀어졌고, 지난 해 이창호를 꺾고 KBS바둑왕을 차지한 '반상의 괴동'목진석은 '바둑황제'조훈현에게 덜미를 잡혔다.

조남철-조치훈 바둑 가문이 배출한 '명가의 후예'이성재 6단은 '명인전의 노장'최명훈 7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한 사람당 7차례씩 대국을 벌이는 8강 풀리그전은 통례상 7전 전승 내지는 6승 1패의 성적을 올려야만 도전권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볼 때 제32기 도전자는 시드 배정자 중에서 나올 확률이 높아진 셈이다.

선두그룹 중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사는 '돌하르방'최명훈 7단. 명인전에서만 두 번(제27기ㆍ제30기) 준우승한 관록에다 지난 해 LG정유배 우승으로 당당히 타이틀 홀더 반열에 올라선 상태라 누구보다도 유력한 도전자 후보로 꼽히고 있다. '차세대 선두주자'의 자리를 호시탐탐 엿보던 이성재와 윤현석을 잇따라 불계로 제압하며 이미 2연승으로 리그 선두에 오른 상태. '돌부처'(이창호의 별명)에 비견할 만큼 계산력과 끝내기 실력이 일품인데다 워낙 침착하고 기복이 없는 기풍이라 리그전과 같은 장기 레이스에 유리하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기사실에 나와 남의 기보를 검토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며 "기풍도 단순한 실리 위주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공격과 두터움을 새롭게 보완하는 등 여러 면에서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지매' 유창혁 9단의 활약도 기대된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답지 않게 명인전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그는 윤현석 6단과 '검토의 제왕' 임선근 9단을 연파, 현재 최명훈과 함께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19일 막을 내린 제2기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결승전에서 양재호 9단을 2승 1패로 따돌리며 우승, 정상 4인방 가운데 가장 먼저 올해 첫 수확을 했다. 1993년(2승 3패로 타이틀 획득 실패) 이후 생애 두번째로 명인 도전권을 노리는 만큼 어느 때보다도 각오가 대단하다. 바둑 전문가들은 "큰 경기에 강하고 결정적 펀치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출전기사 중 이창호 명인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할 후보"라고 말한다.

지난 대회 도전기에서 제자(이창호 명인)에게 맥없이 무릎을 꿇었던 조훈현 9단 역시 올해는 느낌이 아주 좋다. 첫판부터 신?반란의 선봉장 목진석 5단을 만나 고전을 하는 듯 했으나 특유의 쾌속행마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 간단히 돌풍을 잠재웠다. 지난해엔 29승 25패(54.7%)로 반타작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지만 올해엔 벌써 7승 2패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특히 세계최강 이창호와의 대결에게는 3승 2패로 앞서 나가고 있어 더욱 기대를 갖게 한다. 이창호를 꺾고 오른 제44기 국수전 결승에선 '철녀'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상대로 선승을 거둔 상태. 빼앗겼던 국수위를 탈환할 경우 명인전에서도 힘찬 '부활'이 예상된다.

지난 30여 년 간 2인자 그룹엔 단 한 차례도 권좌를 양보하지 않았던 전통과 권위의 타이틀 명인전. 과연 이 보수적인 타이틀에도 새로운 주인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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