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이 온다.온 국민이 춤이라도 추어야 할 일이다. 정부의 공식 견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에 그렇다. 우리 경제의 '개혁 시스템 구축'이라는 대역사(役事)가 완공돼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고 하니 말이다.
이 정권으로서는 '파산 국가'를 물려받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에 감개무량할 것이다.
국민들로서도 환란 이후 긴 터널에서 탈출에 후련함을 느낄 만도 하다.
그러나 정작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정부 당국자들은 기념성 이벤트를 열면서도 연신 목덜미를 쓰다듬는 모습이며, 국민들은 잘해야 무덤덤한 표정들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때마침 경기가 급전직하 중이라는 것. 둘째, 일찍이 환란 극복을 선언하거나 믿었다가 정부 국민 모두가 크게 당한 경험이 있다는 점.
셋째, 미제 처리된 기업과 금융의 잠재부실이 떠다닌다는 점. 넷째, 외환 창고는 채웠지만 국가채무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 ..
여기에 무엇보다 정부의 말과 사실이 다르지 않느냐는 기본적 의심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제 시장 자율에 의해 상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기본 틀이 마련됐다"는 정부측 말에는 사실 관계를 따져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복수 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기업의 파산 및 회생에 관한 법제의 정비 문제, 국영화 은행들의 처리와 관치 금융의 근본적 해결 방안, 재벌의 황제경영 견제 방안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것들은 이 정부가 자랑하는 제반 개혁 프로그램들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일종의 백업(back up) 시스템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기본 틀 완성과 시장자율 '선언을 강행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이런 식으로 건너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국민들은 개혁 시스템 구축이 마치 과거 '경제개발 ○개년 계획'식으로 시한부 달음박질한 데서 개발연대의 정신 유산을 떠올리고 있다.
시장자율 체제로의 전환은 정부 역할과 기능에 일대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엄청난 의미다.
시장에 개입할 명분과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지며, 이를 어기면 내외의 저항과 부작용 등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조직의 축소 개편론까지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내년에 주요 정치일정을 앞두고 있는 집권 후반기의 정부가 개혁의 백미(白眉)인 '시장 자율'을 말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의심이 나온다. 정권의 개혁 엔진이 닳았거나, 막을 내리는 끝내기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인 것이다.
'시스템 완성과 시장자율'구호는 정부가 개혁 전선에서 후퇴하기에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는 게 여하튼 사실이다. 현 경제팀의 컬러도 이런 맥락과 맞아 떨어진다.
이 정권은 얼마 전부터 '강력한 정부'를 외치고 있지만 적어도 경제분야에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어쩌면 이 정부에게 더 이상의 강한 개혁을 요구하는 게 무리일 지 모른다.
오히려 개혁의 퇴로를 열어주어 그 동안의 성과라도 연착륙 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실적 수순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업적의 빛을 내기 위해 무차별적 경기 부양 등 자기 파괴적인 자충수를 연발할 우려마저 없지 않다.
벌여놓은 일의 마무리와 환란과 같은 파국의 예방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 아무래도 3월의 진정한 시의(時宜)는 차기 개혁자를 기다리는 사이클 진입에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의 생리적 시간표와 역학구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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