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41)씨는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1991ㆍ민음사)와 '무덤을 맴도는 이유'(1996ㆍ문학과지성사)를 낸 시인이자, 장편 동화 '햇볕 따뜻한 집'(1999ㆍ창작과비평사)을 낸 동화작가다.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조 은씨는 한국 현대시의 두 흐름 곧 김기림ㆍ김수영ㆍ오규원으로 이어지는 주지주의와 김소월ㆍ김영랑ㆍ박재삼을 거쳐나가는 서정주의의 융합을 꾀하며 짙고 단단한 시를 써 왔다. 그가 최근 '벼랑에서 살다'(마음산책)라는 아름다운 산문집을 냈다.
표제의 '벼랑'은 직설이기도 하고 은유이기도 하다. 조 은씨는 서울 사직동 언덕빼기에 있는 대지 13.75평짜리 집에 산다. 가파른 비탈이 그의 물리적 거처인 것이다.
그 가파른 벼랑은 그가 사는 동네의 지형이면서, 그가 지난 40년간을 부유(浮游)한 일상의 지형이기도 하다. 조 은씨는 경북 안동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양반들'이 득실거리는 그 지방의 번듯한 가문(그는 한양 조씨라고 한다)에서, 온갖 봉건적 에토스를 비웃는 이 비순응적인 여자아이를 어른들이 어떤 눈길로 보았을지는 짐작할 만하다.
조 은씨는 자라서도 직장 생활을 단속적(斷續的)으로 했을 뿐이어서 애옥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집 안팎이 다 벼랑인 것이다.
하긴, 벼랑은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인에게 마련된 합당한 자리인지도 모른다. 이 문집에 묶인 글들은 그런 벼랑의 삶을 거푸집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벼랑에서 살다'에서 어떤 궁색(窮色)이 읽힐 것이라고 예단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기자의 너스레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가난을, 독신을, 세상과의 불화를 얘기하면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는 매달 300만원씩의 금리(金利) 수입을 올리면서도 노후가 무서워 늘 절약만 하는 독신 친구를 비웃고, 독신을 고집하다 뒤늦게 결혼한 친구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비웃고, 세상살이의 안온과 평화를 자신의 인격과 교환하는 이웃들을 비웃는다.
지배적 성으로서의 남성에 대한 근원적 불신을 숨기지 않는 이 페미니스트는 그러니까 성을 불문하고 인간이 지닌 악덕을 차갑게 응시하는 페시미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이 이런 외양의 염세나 혐인(嫌人)을 통해 역설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귀족적 선(善)이다. 거기서 그의 혐인은 보편적 인간을 신뢰하는 사랑의 위력으로 전환한다.
마흔이 넘은 이 처자(處子)는 자신이 혐오하는 핏줄 속의 양반 문화에서 순금 부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를 몽테뉴나 라로슈푸코를 잇는 모랄리스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랄리스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는 못 써도 산문은 잘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를 잘 쓰는 조 은씨는 산문도 잘 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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