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의 투명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또 사외이사들 대부분이 회사측에 우호적인 인물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아 재벌들의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해야 하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25일 관계당국 및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정된 증권거래법에 따라 올해부터 자산규모 2조원이상의 대기업들은 이사회의 이사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하지만 후보군이 빈약하고, 선정기준도 모호해 회사측이 '말랑말랑한'인사들을 추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제도가 현재처럼 유명무실하게 운영될 경우 재벌오너 및 대주주들의 황제경영은 여전히 구두선에 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이사회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하는 대기업은 90개사. 이들 기업들은 모두 454명의 사외이사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마땅한 사외이사 인력풀(집단)이 절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직업적인 이사집단이 폭넓게 형성돼있는 미국 등 선진국은 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이 품앗이 차원에서 타사의 사외이사로 적극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재무 회계 및 경영전략 등 핵심사안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고 있는 변호사와 교수 등 비(非)현업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위촉되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90개 상장사의 사외이사의 직업분포(2000년말 기준)는 경영인 114명, 교수 98명, 금융인 95명, 변호사 44명, 전직 공무원 43명 등으로 집계됐다.
비현업 인사들과 관료, 금융인들의 비중이 높은 것은 기업들이 '누이좋고 매부좋은' 직종의 인물을 선호하는데다, 경영현안에 대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반면 미국은 전현직 경영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1997년 미국의 500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이 66.4%에 달했고, 같은 해 실시된 또 다른 조사에서도 사외이사의 81.1%가 전현직 경영자로 나타난 데서 잘 드러난다.
사외이사의 독립성도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증권거래소가 최근 조사한 '기업지배구조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상장사(74%)가 사외이사를 최대주주의 추천으로 뽑고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사외이사의 의안찬성률은 무려 99%로 사실상 회사의 거수기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외이사 선정 때 모호한 법령도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현행 법령에 사외이사 선정 절차만 명시돼 있지, 최소한의 선정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개정 증권거래법에는 '사외이사는 사외이사가 절반인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사회와 주총에) 추천해야 한다'고만 돼 있다.
대기업들은 이에 따라 명문상의 사외이사 선정기준을 거의 두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이사회 담당자는 "사외이사 추천이 증권거래법상의 규정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특별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의 기준은 '유가증권 상장규정'상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경영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의적인 기준만 갖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 기업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추천대상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회사측에서 제공한 예상 후보들 중에서 추천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애당초 사외이사 후보자들의 성향은 회사측에 의해 결정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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