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제42회 사법시험에 합격, 다음달 사법연수원 생활을 앞두고 있는 이정섭(30.연세대 법학과 4)씨는 26일 졸업식에 참석하는 대신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챙겨 부모님 몰래 한국체육대학교에 다녀올 계획이다.권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씨는 26일 제37회 서울시 신인 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라이트웰터급(63.5kg이하) 일반부 경기에 출전한다.
"초등학교 때 권투경기가 있으면 학교수업도 빼먹었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라스베이거스 특설링에 오르는 꿈을 꿔 왔다.
지난해 6월 사법시험 2차시험을 치르기가 무섭게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승리체육관(관장 박영섭)에서 본격적으로 훈련에 전념, 이번 대회를 준비해 왔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96년 군입대 전 남영동에서 6개월 간 퀵서비스 배달원으로일했고 제대후에도 1년간 택시운전을 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갖고있는 운전면허만 5개. 인기드라마 '모래시계'의 검사(박상원 분)와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이씨의 희망 역시 검사이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면 권투선수가 되겠다고 말한다.
지난해 봄 체육관을 찾아온 이씨를 처음 알게 된 박영섭(50) 관장은 "가능성이 엿보여 프로선수로 키워볼까 했는데 공무원 신분은 프로직종에 진출할 수 없다니 안타깝다"고 서운해 했다.
이씨를 지도해 온 최창석(57) 서울아마추어복싱 연맹 심판위원은 "천진난만하고 소탈한 정섭이가 '링 위의 평등정신'을 바탕으로 장차 훌륭한 검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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